[지상 백일장] 딸과 한집 살이/달력/아름다운 동행/한 해를 보내며

입력 2011-12-30 07:37:12

◆수필

♥딸과 한집 살이

딸아이가 복직을 두어 달 앞두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딸을 봐 달라며 내가 사는 집 3층으로 이사를 했다. 넓은 집에 있던 짐을 그 반밖에 안 되는 평수로 이사하면서 다 들일 수 없어 옥상에 조립식 창고를 만들어 짐을 들여놓았다. 내 딸은 딸아이 두 명을 키우면서 엄마가 딸을 키우는 심정을 알겠다면서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 왔다는데, 실은 두 딸을 봐 주며 자잘한 일을 도와 달라는 은연중의 바람이 있는 것도 안다.

처음엔 외손녀 봐주면서 적적하지 않을 것 같아 승낙을 했지만, 한 달여 지나고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부산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어져 사생활 침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시로 아이들이 할머니 하며 불쑥불쑥 찾아오고 간편한 밥상 차림도 이제는 사위가 있으니 더 신경을 써야 하고, 한집에 산다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줄 몰랐다. 두 아들은 저들끼리 재미나게 살라고 분가시켜 놓고, 뒤늦게 딸과 함께 한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결코 재미나는 일만은 아닌 듯싶다.

"늙은이도 사생활이 있다. 수시로 들락거리지 말고 아이 맡길 때만 오너라." 이 말을 듣고 "엄마는 내가 싫은가봐?"하며 뽀로통하다. 이것이 세대차이인가 보다. 아무리 적적하여도 또래들과 놀아야 재미가 있지, 출가한 딸아이와 여가 시간 보내는 일은 가끔이지, 생활공간이 같으니까 불편하기만 하다. 먼저 경험해 본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도 그르지 않은 듯싶다. '각자 살림을 살아야지, 한데 섞이면 소리가 나게 마련'이라는.

오늘도 내 딸은 백화점 쇼핑 간다며 두 딸을 내게 맡기고 나갔는데 아이들은 거실에서 야단법석이다.

밤늦게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다 잠이 든 티 없는 손녀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저 예쁜 아이들을 공짜로 안아볼 수 있고 할머니 볼에다 뽀뽀도 해주는데 이것쯤이야! 세상엔 공짜가 없는가 보다.

손영숙(대구 서구 내당3동)

◆시

♥달력

벼랑 끝에 몰린

한 해의 끄트머리가,

차디찬 암벽에서

안간힘 쓰며,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창백한 모습으로 처절하게 달려 있다.

서로 포옹하고

다정하게 잡았던 손 놓아 버리고 갈 수밖에 없었던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의 아쉬운 시간들.

이젠 12월만이

외롭게 외롭게,

속 울음 삼키며

텅 빈 종가(宗家)집에서,

종부(宗婦)처럼 쓸쓸히 지키고 있다.

그래도

마음속엔 언제나 그랬듯이

햇살 고운 봄볕을 희망으로 지피며,

아름다운 재회(再會)를 부화하고 있다.

정창섭(밀양시 내이동)

♥아름다운 동행

이토록 넓은 세상에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 중에

당신과 나 우리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났습니다.

동녘의 떠오르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황홀한 아름다운 축복의

기적같은 행운의 인연입니다.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되어

겨울을 이겨 낸 나목 위에

연둣빛 행복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큰 산 하나 내 앞에 우뚝 서

싸한 바람은 잠을 자고

휑한 가슴속에 아담한 집을 지었습니다.

어깨위의 노을이 부서져

하얗게 내려앉아도

당신과 나는

아직 남아 있는 파아란 꿈이 있습니다.

서산에 짙어가는 황혼의 끝자락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어깨동무로

따뜻이 보듬어 줄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내 등 뒤에 당신이 있고

당신 등 뒤에 내가 있어

서로에게 언제나 든든한 힘이 있습니다.

하늘이 마련해 준 소중한 인연

감싸주고 아껴주며 서로 기대며

감사한 마음으로 평화롭게

단풍 빛 인생길을 걸어 갑시다.

남은 삶은

욕심부리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한결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가슴에 온기가 남아 있는 그날까지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이금란(대구 동구 불로동)

♥한 해를 보내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나의 생활은 변함이 없다만

세월은 흘러 한 해의 끝자락이네.

반짝이는 별을 찾아 헤맸던 봄,

몸뚱어리가 반란을 일으켰던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

속절없이 가버린 청춘처럼,

나의 사십대도 가는가보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어릴적 꿈 꾸었던

멋진 중년의 모습이 아니다.

맑게 빛나던 눈동자도 빛이 바랬고,

서글픈 얼굴위엔 하얀꽃이 피었고,

꿈이 사라진 가슴속은 갈대처럼 서걱대고,

어제와 연이은 별 다를게 없는 날이겠지만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새해를 맞아야겠다.

머리가 하야면 어떠랴, 아직 오십 밖에 안됐는데,

지천명의 나이로 바라보는 세상도

아름다울거야.

최순단(대구 수성구 만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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