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정(井)괘는 좋은 우물을 이렇게 정의한다. '차고 맑고 깨끗하며 끊임없이 샘솟아 흘러 누구나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역학자 서대원은 그의 책 주역강의에서 정괘에 '민심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란 해설을 붙이고 있다. 우물의 물은 퍼낸 만큼 새로 고이지만 퍼내지 않으면 썩어 버리고, 우물의 발길을 막는다면 우물은 쓰지 못하게 된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누리게 해야 세상은 발전한다는 해석을 붙인다.
마을을 열고 우물을 고치지 않으면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시작하는 본문도 핵심은 버려둔 채 겉만 번드르르하게 해서는 헛일이라고 해석한다. 우물을 만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것은 아집과 편견 교만에 사로잡힌 지도자의 잘못된 자세라고 일침을 놓는다. 누구나 먹을 수 있게 개방하되 우물을 청소할 땐 동네 사람 모두가 함께 청소하고 가꾸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만인을 위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그의 해석은 정치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의 충고로 들린다. 마을을 세우려는 자가 먼저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이나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고자 하는 이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줄 자세와 능력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는 말은 같은 맥락이다.
내년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한 해가 될 게 뻔하다. 선거 때문이다. 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여야 가리지 않고 공천을 둘러싼 힘겨루기와 싸움이 예상된다. 칼자루를 쥔 쪽은 개혁을 주장하겠지만 밀려난 사람들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터다. 온갖 의혹과 폭로, 막말도 예상된다. 선거 유세가 시작되면 또 이런저런 말싸움이 시끌벅적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총선이 끝나면 곧바로 대통령 선거전이 이어진다. 이래저래 어지러운 한 해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시끄럽고 어지럽다고 선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거야말로 시민의 자유와 귄리를 지키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없다면 권력은 결코 자신들의 힘과 이익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자유를 지키고 키워감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수단이 선거인 것이다.
올 한 해는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가치가 있다. 기존 거대 정당이 손에 손잡고 함께한 국민들의 동행에 맥없이 무너졌다. 여야는 너도나도 국민의 이름을 내걸고 정당 내부를 수리 중이다. 구경하고 먼 산 보던 국민이 정치에 눈을 돌려 정치판의 옷을 바꿔 입게 했다.
국민이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이제 국민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새 우물을 파야 한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맡길 게 아니라 국민들이 새 우물을 함께 파야 한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는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바꾸고선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들만의 세상을 추구해 온 정치권력의 이기심을 잠재우기 위해선 먼저 권력과 관련된 제도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소통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
선거로 인한 혼란은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준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어지러우면 힘없는 서민들의 삶은 더 궁핍해진다. 벌써부터 시중에선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전망들을 한다. 선거가 있는 해는 오히려 시중 경기는 더 오그라든다는 게 정설이다. 선거는 선거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누가 권력을 잡고 누가 대표로 뽑히느냐가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선거다. 선거 자체에 몰두한 채 누가 어떻게 되느냐에만 관심을 두고선 국민의 삶은 나아질 수 없다. 수많은 공약은 갈등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국민의 공허감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정치에 눈 돌린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제 정치 제도와 권력구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극단적인 정쟁이 독식 구조에서 비롯된다면 독식 구조를 바꾸어야 하고 권력이 한 곳에 집중돼 있다면 힘의 균형을 맞추는 구도를 짜야 한다. 이제 국민은 더 이상 구경꾼일 수 없다. 이왕 나선 이상 국민들이 정치를 즐겨야 한다. 공연장에 몰린 관객들이 함께 춤추며 함께 노래하듯 말이다. 대구경북은 또 도마 위에 올라설 수 있다. 선거 후유증이 대구경북을 대한민국의 섬으로 만들 수도 있다. 대구경북이 한국의 섬으로 밀려나서야 될 일인가.
徐泳瓘/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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