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0일 아침, 수성구 신매동 소재 한 아파트에서 중학교 2학년인 한 학생이 투신으로 세상을 버렸다. 불과 열네 살, 친구들로부터 폭력과 협박에 시달렸던 그 어린 영혼은"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대로 계속 살아 있으면 더 불효를 끼칠 것 같다"는 유서를 남겼다.
암담하다. 소년이 죽음이라는 극단의 문턱에 다가서기까지 그 누구도 손을 잡아주지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스스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누구에게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가 죽음을 결심하고 써 내려간 유서 앞에 사람이 희망이라고 말해왔던 글쓰기는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 허깨비 놀음이었단 말인가? 아이를 괴롭히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간 또래 아이들의 사악함이 문제였노라고 단죄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또한 관리 감독이 소홀했노라고 학교를 질타하기는 또 얼마나 편리한가? 어쩌면 그런 처방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을 없애지 못하고 오히려 방치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벌어졌던 무상 급식 논쟁이 심각한 편 가르기 정치 놀음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우려를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고픔과 배 아픔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너무나 당연한 일조차도 누가 먼저 제기했느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소모전 속에 방치된 교육은 단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의 법칙만을 강조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인간의 가치가 설 자리는 아무 데도 없다. 피가 흐르지 않는 인터넷만이 아이들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어른들은 그저 방관만 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가해자를 단죄(斷罪)하고 교육당국의 무능함을 치죄(治罪)하는 것만이 능사인가를, 정말 그 어린 영혼이 아파트 발코니 난간 위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신의 아픔을 토로할 곳이 그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를. 어쩌면 우리 사회가 우리 어른들 모두가 가해자가 아니었는지를.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 지금 전한다."며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은 그 유서의 말미는 세상의 불의를 내 일이 아니기에 외면했던 날들을 가차없이 찢어 놓는다. 인제 와서 희망이 없다고 말해버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변명이다. 젊은 날, 세상의 모든 불의에 분노했던 영혼들은 모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전태흥/(주)미래티엔씨 대표 사원
댓글 많은 뉴스
"헌법재판관, 왜 상의도 없이" 국무회의 반발에…눈시울 붉힌 최상목
임영웅 "고심 끝 콘서트 진행"…김장훈·이승철·조용필, 공연 취소
음모설·가짜뉴스, 野 '펌프질'…朴·尹 탄핵 공통·차이점은?
이재명 신년사 "절망의 늪에 빠진 국민 삶…함께하겠다"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 준동으로 대한민국 위험, 끝까지 싸울 것" 尹 지지자들에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