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방치사(放置死)

입력 2011-12-27 10:59:07

스탈린은 1953년 3월 5일 죽었다. 사인은 뇌출혈. 최초 발작이 찾아온 지 사흘 만이다. 그 사이 스탈린은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다. 참모들은 한동안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은 심복 중의 심복 라브렌티 베리야는 술에 잔뜩 취한 채 스탈린의 경호원들에게 "스탈린 동지가 깊이 잠든 게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당장 나가! 스탈린 동지의 잠을 방해하지 말고!"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의사에게 연락이 간 것은 12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렇게 늦어진 이유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었다. 스탈린이 죽어간다는 소식에 그의 아들 바실리는 베리야를 비롯한 정치국원들에게 "더러운 돼지 같은 놈들! 너희가 아버지를 죽인 거야!"라고 소리쳤다. 의사들도 자신의 목숨을 도박에 걸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베리야를 비롯한 정치국원들에게 모든 의료 행위를 해도 좋다는 명확한 허락부터 요구했다. 섣불리 치료를 했다가 스탈린이 죽으면 '제국주의자의 암살 지령을 받은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스탈린은 미국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이 의사들을 시켜 소련 지도자 살해를 기도하고 있다는 이른바 '의사들의 음모'를 조작, 대거 숙청에 나서고 있었다. 결국 스탈린은 자신의 공포정치에 희생된 셈이다.

스탈린도 부하들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음을 알았던 모양이다. 얼마 전 사망한 그의 딸 스베틀라나의 회상이다.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 갑자기 눈을 뜨고는 병실에 모인 사람들을 한 명씩 쳐다보았다. 무서운 눈빛이었다. 광기, 아니 분노에 싸인 눈빛이었고 죽음의 두려움에 싸인 눈빛이었다." 그의 죽음에 누구보다 안심한 것은 베리야였다. 베리야는 훗날 몰로토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리한 겁니다. 내가 여러분의 목숨을 구했단 말입니다."

김정일의 사망 발표 직후 불거졌던 암살설은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국내의 반응이었다. 김정은 후계 체제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맞는 것 같다. 권력을 틀어쥔 아들이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암살이 가능했겠는가. 그럼에도 의심은 숙지지 않는다. 사망부터 발표까지 무려 51시간 30분이나 걸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철의 장막 안의 일이니 지금이야 발표대로 믿을 수밖에 없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 시간 동안 그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