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궂은일이든 경사로운 일이든 큰일이 닥쳤을 때 대처해 나가는 걸 보면 그 집안이 제대로 된 집안인지 콩가루 집안인지를 안다고 했다.
60년 넘게 주적(主敵) 국가로 대치해온 북한을 놓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해온 대북 정보력이 김정일 위원장 사망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국정원은 다리를 만지며 기둥 같다고 하고 군부는 귀를 만지며 가죽 같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때 북 소행이다, 자폭이다며 좌'우파들이 콩가루 집안처럼 떠들어 댔던 때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김정일이 타고 있었다는 열차가 '안 움직였든'(국정원) '움직였든'(국방부) 그게 무슨 대수인가. 일 터질 때마다 정부를 향해 대북 정보력을 한바탕 비난하고 국정원장 목이나 떼라고 고함지르고 나면 '상황 끝'이었던 우리 내부가 더 문제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이 기회에 앞으로 또 무슨 큰일이 터져 나올지 모를 위기 상황에 대비한 지피지기(知彼知己)의 국가 정보력을 제대로 갖추는 일에 통치력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 북한에 전술핵(核)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몇 기나 있을지도 모른 채 핵 회담 자리에 몽유병 환자처럼 끌려다니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북한군 인맥에 어느 선까지 종횡으로 엮어 두었는지는 물론이고 북한 붕괴 후 중조(中朝) 합병 공작(工作)의 침투는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티끌만큼도 모른다.
김정일 사후의 가상 대책이래야 핵 도발, 내부 인민 반란, 군부 봉기 정도다. 대폿집에서 소주 한 병만 세워 놓으면 갑남을녀(甲男乙女) 너도나도 풀어내 놓을 수 있는 수준의 작전이고 대책이다. 군부나 국정원은 항변할 것이다. '요즘 첩보력은 위성, 통신, 전자정보 등으로 결정된다'고. 그러나 손자병법은 그런 안이한 변명을 단칼 같은 논리로 잘라버린다.
손자는 13편의 병법서에서 용간(用間) 편을 맨 마지막 마무리 편에 넣었다. 그만큼 모든 병법의 진수가 용간에서 매듭지어진다는 중요성을 강조하려 했는지 모른다. 손자는 '적을 이기는 것은 적정(敵情)을 먼저 아는 것'이라 했다. 이른바 선지(先知)다. '먼저 적을 아는 데 있어 귀신에 의탁해서도 안 되고 일의 표면에 나타나는 것만 보고 판단해서도 안 되며 염두(念頭)에 의존해서도 안 되고 추측해서도 안 된다.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사람이란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등 다섯 종류의 간첩이다. 적의 동태, 배치 등 바깥 징후로 살피는 32가지 판단법(오늘날의 위성 첩보, 통신전자 정보)이나, 똑똑한 국정원장, 육군대장의 머리에서 추측된 '염두에 둔 짐작'은 맥을 못 썼다. 그래서 손자는 직접 사람을 써야 그런 겉보기 정보들도 제대로 분석된다고 2천500여 년 전에 가르친 것이다.
김정일 사망 정도의 정보라면 평양 밀실에 심은 향간(鄕間)이나 내간(內間)이라야 캐낼 수 있다. 그전엔 있었을 북한 내부의 우리 쪽 향간과 내간이 이번엔 왜 작동하지 못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세칭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인적 정보)가 DJ 정권 시대에 이미 붕괴됐기 때문이다. DJ는 집권하자마자 대북 정보망 수집 관리에 잔뼈가 굵은 수십 명의 엘리트 국장급들부터 일시에 다 잘라냈다. 평양에 심어놓은 향간, 내간도 함께 사라졌을 것이고 제임스 본드로 키워둔 생간들도 죄다 꺾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간첩 안 잡는 국정원'의 오명이 이어졌다. 고양이의 발톱을 다 빼놨으니 쥐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이치. 지금 거꾸로 남한 내부에 생겨난 향간과 내간이 몇만 명인지 모른다는 게 정보계의 통설이다. 좌파 정권 10년을 두고 따져보면 지금 정부의 국정원장은 그때 이후 망가진 대북 정보망을 복구 중인 셈이다. 그럼에도 DJ 후예 야당은 국정원 대북 정보망이 장님 같다며 원장 목부터 자르라고 한다.
국내 언론은 북한 주민 조문 눈물이 진짜냐 가짜냐는 3류 추리소설이나 쓰며 지난 1주일 내내 추측 보도와 갑론을박으로 지샜다. 손자가 봤으면 무덤에서도 웃을 일이다. 제갈량은 하늘의 유성(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고 적군의 장수가 죽을 거라는 걸 미리 알아냈다고 했다. 우리도 천문지리에 밝은 자를 국정원장에 앉혀서 북쪽 하늘 별똥별이나 쳐다보고 있도록 하는 게 나으려나?
김정일 위원장, 그는 외치(外治)가 제대로 되려면 우리 안부터 제대로 다져야 한다는 교훈 하나는 확실히 주고 갔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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