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맛있게 먹기] 연극평론을 위한 작품분석- (4) 배우의 이해

입력 2011-12-22 13:57:04

'연극의 꽃'…타고난 재능'연기훈련으로 작품 꽃 피워야

앞서 '배우예술' 편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배우는 그야말로 연극의 꽃이자 중심이다. 그래서 연극은 배우예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이는 극장을 찾은 관객이 희곡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작품을 만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연극의 최전방에서 직접 관객과 소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가 연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을 보고 분석하는 관객이나 평론가들은 그런 배우 연기의 좋고 나쁨을 어떻게 판가름해야 할까? 도대체 무엇을 보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우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배우에게는 무엇보다도 좋은 신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타고난 신체의 우수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의 신체 즉 몸은 음악으로 본다면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이자 악기 그 자체이므로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좋은 연주자가 좋은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 확률이 더 높은 것과도 같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좋지 않은 악기라도 연주자가 좋아서 혹은 연주자의 실력이 월등하지 않더라도 악기가 좋아서 좋은 음악을 들려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좋은 악기에 좋은 연주자가 함께 만나는 것보다는 그 가능성이 낮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에게는 연주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또 좋은 악기가 되기 위해서, 그에 걸맞은 신체훈련이 요구된다. 흔히 말하는 타고난 천부적 재능을 인정한다고 해도 결국 신체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좋은 배우, 연기 잘하는 배우, 훌륭한 배우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배우의 신체훈련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배우 신체훈련이란 말 때문에 조금 딱딱하고 어렵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무척 쉬운 개념이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종목에 필요한 운동을 체계적으로 훈련해 실제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배우의 신체훈련도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모델이 패션쇼 무대에 서기 위해 워킹과 포즈를 연습하는 것, 발레리나가 발끝으로 서고 점프를 연습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배우는 무대 위에서 걷는 연습, 뛰는 연습, 앉는 연습 등 인간의 기초적인 행동부터 과장되거나 위축된 행동, 동물의 행동, 춤 등 신체로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몸짓을 훈련한다. 그리고 모델이나 무용수보다도 더 복잡하고 섬세한 표정을 자주 요구하기 때문에 눈, 코, 입, 혀 등 얼굴의 근육들 하나하나까지도 느끼고 제어하는 훈련도 한다. 물론 이런 점들은 몸짓만으로 작품을 표현하는 무용수들과 닮아 있다.

하지만 배우에게는 또 다른 점이 요구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호흡훈련도 하고 발성훈련도 한다. 길고 강한 호흡을 가지면 다양한 감정이나 폭발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좋고, 발성이 좋으면 전달력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목소리의 높낮이나 폭, 억양, 속도, 사투리 등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자신의 본 모습과는 달리 개성이 강한 새로운 인물을 표현하기에 좋을 수밖에 없다. 타고난 음색을 바꾸긴 어렵다고 해도 어투는 얼마든지 훈련으로 변화가 가능하다. 또한 말 사이에 잠시 쉬는 지점과 그 길이를 다르게 하여 전혀 다른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배우의 신체훈련 안에 포함된다.

또한 위에서 말한 신체훈련과는 별도로 감정훈련이 있다. 이는 신체훈련을 통해 터득한 얼굴 표정이나 호흡, 발성 등에 감정을 싣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개념이 연기훈련이다. 그러니까 연기훈련은 신체훈련과 감정훈련을 포함할 수 있는 더 큰 개념이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함께 연기하는 다른 배우와의 호흡을 맞추는 훈련을 마지막으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관객이나 평론가는 무대 위의 배우가 제대로 훈련이 되어서 작품 안의 인물로 녹아들었는지, 다른 배우와의 호흡은 적절한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면 된다. 유의해서 볼 점이라면 다른 배우들과 작품 자체는 보이지 않고 특정 배우의 연기만 돋보이는 경우다. 그런 경우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고 홀로 돋보이는 특정 배우 또한 뛰어난 배우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배우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배우는 연극의 꽃이자 중심이기 때문에 혼자 돋보일 게 아니라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그 작품 안에서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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