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일본, 사과할 자들이 아니다

입력 2011-12-19 10:50:21

겨울 칼바람이 매섭다. 서울 한복판 주한 일본 대사관 코앞에 세워진 '위안부 평화 비(碑)' 소녀상(像)도 추위에 목도리를 둘렀다.

'일본군 위안부'.

태평양 전쟁 내내 꺾이고 짓밟혔던 식민 국가 조선 소녀들의 이름이다. 넋으로 사라진 헤아릴 수 없는 그녀들의 아픈 역사는 전쟁이 끝난 지 66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그때의 아픔 그대로 남아 있다. 정부에 공식 등록했던 234명의 위안부 중 생존자는 이제 겨우 63명. 올 한 해만도 열여섯 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한(恨)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생존한 분들의 나이는 이미 평균 86세다. 줄잡아 10여 년 안팎이면 아마도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픈 역사 속에 '종군 위안부'란 슬픈 이름만 남긴 채 사라져 갈 것이다.

19년 전부터 시작했던 '수요 집회'(일본군 위안부 공식 사과와 배상 요구 모임)도 1천 회를 넘겼다. 단일 주제 집회로는 최장기 집회다. 10년 전에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정작 사과와 배상 책임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거꾸로 자기네 대사관 앞에 세운 종군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강변하고 있다. 철거 이유도 왜인들답게 속 좁은 논리를 댔다. '외교 시설의 안전과 품위 유지에 주재국(한국) 정부는 협조할 의무가 있다'는 국제조약(비엔나 협약 22조 2항)을 끌어댔다.

구리로 만든 소녀 동상이 대사관 안전에 위협이 된단다. 동상이 대사관에 걸어 들어가서 폭탄이라도 던지나? 품위 유지? 남의 나라 침략해서 어린 소녀들에게 성적(性的) 학대를 일삼았던 국가가 감히 품위를 말하는가. 그런 섬나라의 오만한 이기심은 63명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결코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 섬나라 왜인들의 DNA 속에 해답이 들어 있다. 그들은 종군 위안부를 그들 세계의 기생이나 유곽의 여인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발간된 기생이나 몸 파는 유녀(遊女)와 관련된 일본 작가'문인 등의 저서들만 봐도 그러한 비하된 인식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스기야마 지로 같은 자는 일본 바닥의 몸 파는 유녀가 조선에서 건너왔다는 도래인설(渡來人說)까지 주장했다.

조선 의기(義妓) 논개의 항일 정절도 역사 공상 소설쯤으로 치부한다. 논개가 남강에서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죽은 이야기를 이름 없는 하찮은 병사와 관기(官妓)가 함께 죽은 시시한 얘기로 끌어내리려 든다. 죽은 일본 장교가 게야무라 로쿠스케라는 주장이 '이렇다 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게야무라 로쿠스케란 무사는 '한국에서는 어리석고 여색에 눈이 멀어 죽은 바보 군인으로 돼 있지만 일본에서는 효자이면서 거대한 힘을 가진 영웅으로 스승의 원수를 갚는 무사들의 귀감이 된 인물이다'고 쓰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게야무라가 원래는 조선에서 온 조선인 후예로서 조선에 침략군으로 가 고향의 미인을 품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황당한 추측까지 내놓고 있다. 몇몇 일본 작가들의 궤변에 몸 달 것도 없겠지만 그런 인식들은 곧 일본 정부의 조선인 위안부 인식 속에 녹아 있다고 봐야 한다.

일제강점기 때(1926년 기준) 부산의 유흥가였던 미도리 마치의 인구 통계를 보면 일본 남자 인구는 352명이었으나 일본 여성은 598명이었다. 일본의 유녀들이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섬나라 왜인들은 유녀 문화에 일찍부터 젖어 있었다. 따라서 전쟁 중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도 그들에게는 동일 선상에서 인식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식민지 국가의 여성임에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사관 앞 소녀 동상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이 왜곡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위안부 사과, 배상 문제는 그들의 오만한 식민지 의식을 깰 만한 더 큰 힘으로 부딪쳐야 해법이 나온다. 그것은 군사력일 수도, 경제력일 수도, 문화 우위의 힘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신(神)이 말하는 큰 '용서'의 힘으로 극복할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수요집회는 1천 번 아니라 1만 번을 열어도 그들은 귀를 닫는다. 역사가 남긴 생채기는 미래의 긴 역사로 치유하는 길밖에 없다. 마음 아프지만 그게 현실이고 해답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가 빚어낸 상처가 우리 탓이기도 하다면 차라리 우리 정부가 보살펴 드리는 게 그나마 그분들의 자존심을 지켜 드리는 길일 것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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