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그리운 크리스마스

입력 2011-12-19 08:31:27

내 고향은 아득하고도 아득한 산골 마을이다. 겹겹이 둘러쌓인 산속에 마치 어린아이가 그려서 펼쳐놓은 한 장의 풍경화같은 작은 마을이었다. 봄이면 온갖 꽃들이 피어 온 동네가 화사한 향기에 가물거렸고 여름이면 한없이 푸르던 들판, 가을이면 맑은 대기 속에서 주렁주렁 열리던 머루와 다래들, 겨울이면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눈사람을 만들며 놀던 고향의 추억들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한다.

농사철 틈틈이 동네 어른들은 마을에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하는 절에 가셔서 불공을 드리는 일을 농사일 다음으로 생각하셨다.

그러던 어느 봄날, 우리 마을에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 교회가 생기면서 마을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제일 먼저 어린아이들을 전교의 대상으로 삼고 학교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집으로 방문을 하면서 동네 어른들을 불안하게 했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앉혀놓고 예수쟁이가 어린이들을 꼬여 잡아간다니까 절대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는 안된다고 여러 번 다짐하고 또 하셨다.

그런 어른들의 억압에 눌려 우리는 낯선 사람들만 보면 숨거나 피해 버렸다.

그러나 성탄절이 가까워지면서 성탄절날 교회에 가면 사탕과 비스켓을 준다는 소문이 동네 아이들에게 파다하게 퍼졌다. 가난했던 그 시절 사탕과 비스켓은 우리가 제일 먹고 싶어하던 꿈속의 간식이었다. 우리는 어른들 몰래 성탄절 하루만 교회에 가기로 하고 작전을 짜기로 했다. 동네에 어둡살이 끼이면서 아이들은 하나 둘씩 동네 어귀에 있는 짚더미 곁으로 모여서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복자와 실근이 그리고 나, 세 사람이 교회를 갔다오기로 결정하고 우리는 발목까지 빠지는 눈속을 걸어 교회로 갔다. 교회 안은 따뜻하고 평화스러웠으며 하늘에서 천사가 불러주는듯한 은은한 성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있었고 하늘종이 있었고 아기예수님이 있었고 날개를 단 천사가 있었다. 눈처럼 하얀옷을 입은 천사가 나오는 연극에 동방박사들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을 들고 등장하였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충격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산골마을의 망개열매처럼 자라던 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어린 나비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 신비한 분위기에 감동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네아이들을 생각하며 교회를 빠져나온 우리는 끝없이 내리는 눈길을 걸어오면서 처음으로 느꼈던 성탄의 의미를 이야기 하였다. 짚단 속에 숨어있던 아이들과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가만히 불러보던 아기예수님, 그날 아기예수님은 가난한 우리에게 맛있는 과자를 먹게해 주었고 나에게는 더 신비한 세상으로 나아가게하는 문화적 충동을 가슴에 심어 주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시린 손마다 과자를 꼭 쥐고 걸었던 고향마을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 올망졸망하던 얼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아기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황영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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