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마을에 들어서니 누룩 빚어 만든 술 향기가 솔~ 솔~

입력 2011-12-17 08:00:00

술이 익어가는 경남 거창 국농소마을

기자가 거창군 국농소 술 빚는 마을에서 밀가루 반죽과 누룩을 골고루 섞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자가 거창군 국농소 술 빚는 마을에서 밀가루 반죽과 누룩을 골고루 섞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장이 아닌 가정에서 담근 술이 좋다. 내 손으로 만들었으니 더욱 애정이 가고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배워야 한다. 직접 정성스레 담근 술은 6개월 후 세상에서 가장 진귀하고 향긋한 술로 변해 있다. 그때, 재료비만 내고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술독(20ℓ 항아리)을 찾아가면 된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떠올려본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물질적으로 곤궁했지만 동양화의 여백이 느껴진다. 기자가 지난주말 찾아간 경남 거창의 국농소마을 역시 술 익은 마을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거창IC에서 빠져나오자 곧 술익는 마을이 나타났다. 물론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는 없었지만 양조 체험을 하러 온 손님들이 가득했다. 거창군의 지원을 받아 술을 담그고 있는 '더불어 사는 삶, 따뜻한 세상'을 지향하고 있는 '터울'이라는 곳이었다. 가정집 형태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양조장이었다. 안방은 술이 발효'숙성되는 공간이었으며, 거실은 누룩을 빚는 등 손님들이 술을 만드는 공동 작업장이었다. 거창 국농소에서 술 만들기 체험에 돌입했다. 늦은 밤 체험이 끝났을 때는 기자의 이름을 술독에 표시해두고 6개월 뒤를 기약하고 돌아왔다.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내가 담근 술

내가 직접 담근 술. 어렵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나씩 따라하니 나만의 술이 완성됐다. 술의 생명은 누룩. 이 누룩은 알코올을 발효시키기 위한 미생물의 집이다. 누룩 띄우는 모든 과정은 미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누룩은 이미 잘 만들어진 것이 있었다.

기자는 함께 양조체험을 하러 온 이들과 통밀(전남 구례군에서 생산)로 만든 반죽에 누룩을 섞는 작업을 먼저 했다.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골고루 묻혀서 이리저리 으깨 반죽을 하는 작업이다. 대충 하면 될 것이라 여겼는데 쉽지 않다.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30여 분 동안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또다시 위로 아래로 여러 차례 반죽을 하고 나니 제법 골고루 반죽이 됐다. 주변에선 기자에게 덩치만 컸지 반죽도 제대로 못한다며 놀리기도 했다. 이에 한마디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습니다."

반죽을 다 하고 나니 술항아리가 등장했다. 각자 술을 담그는 술독인 셈. 큰 스테인리스 대야에서 만든 반죽 덩어리를 술항아리 맨 아래에 차곡차곡 담는 작업을 했다. 그것만 하면 1차 작업은 끝이다. 밑술 작업이 끝난 것이다. 그 다음에 1차 덧술, 2차 덧술, 3차 덧술, 그리고 고두밥 넣기, 마지막으로 채주를 하면 된다. 3개월 정도 지나면 맑은 청주를 맛볼 수 있지만 가장 향이 좋고, 먹기 좋은 상태가 되려면 6개월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쉽지만 직접 만든 반죽이 든 술항아리는 이름을 붙여 안방에 놓아두고 왔다.

이곳 책임자 장현선(42'여) 씨는 "술의 발효는 단발효와 복발효가 있는데 단행식 복발효로 만든 술이 맥주와 위스키이며, 효소와 효모를 병행 발효시켜 만든 것이 우리의 전통주인 소주"라고 설명했다.

◆거창군 국농소에서 만드는 술

거창군에서 지원을 받아 만드는 터울주는 미생물의 최적 번식조건 등으로 특유의 발효비법으로 만든 웰빙 가양주이다. 이 터울주는 지난 10월 29일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금상까지 수상한 검증된 술로 전국적인 향토주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시설장 최경화(46'여) 씨는 "원래 우리 전통술은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로 각자 가정에서 빚어야 제맛이 나는 것"이라며 "이곳 국농소마을 터울양조장은 이런 우리 전통주 개념을 살려 만든 체험장이자 거창만의 특별한 술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술 담그는 체험이 대략 끝나자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가 이어졌다. 이곳에서 빚은 3개월 발효주를 꺼내왔다. 6개월이 된 술은 이미 동이 나고 없어 어쩔 수 없이 3개월 숙성된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 술 역시 은은한 향에 부드러운 목넘김, 온몸에 파고드는 알코올 흡수력 등이 상업적인 술과는 한차원 격(格)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전통술의 특징은 이렇다. 맛이 다양하며, 깊이가 있으며, 풍미가 있고, 몸에 좋다. 술 만드는 방법도 지역마다 마을마다 가정마다 조금씩 달라 각종 문헌 등을 종합해 보면 600여 종의 술 제조법이 수록돼 있다고 한다.

더불어 이날 기자가 직접 체험한 기본적인 가양주에다 오미자, 포도, 흑삼, 매실 등 다양한 과실 등을 넣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테마주로도 손쉽게 변신이 가능하다. 사과나 딸기를 좋아한다면 싱싱한 과일을 발효된 술 안에 넣기면 하면 멋진 사과주, 딸기주가 된다.

한편 농촌진흥청은 우리 전통주의 맥을 잇고 전통주산업 활성화를 위해 2008년부터 내년까지 모두 13개 전통주 복원을 목표로 매년 2, 3종의 우리 옛술을 발굴, 복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복원한 전통주는 삼일주, 황금주, 녹파주, 아황주, 도화주, 석탄주, 벽향주 등 모두 7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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