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2000여기 '신화의 부활' 세계문화유산 추진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할거하던 삼국시대에 '가야'가 있었다. 삼한 중 변한 세력이 소국으로 발전한 가야제국은 초기 금관가야, 후기 대가야가 한반도 동남부 일대에서 신라, 백제, 왜(倭)와 대등하게 교류하고 다투며 세력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적게는 12개에서 많게는 20여 개 소국으로 이합집산하면서 하나의 통일왕국을 건설하지 못한 데다 신라에 복속되는 패배한 역사로 인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대가야 왕(족)과 귀족 등의 무덤 2천여 기가 모여 있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 가야산 건국신화, 왜와의 문물 교류, 중국 남제에 파견한 사신, 우륵과 가야금, 철 기술과 토기 등에서 보듯 가야는 삼국시대 또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었다. 최근 경상북도 3대문화권사업의 하나로 가야가 집중 조명되면서 관광자원화가 모색되고 그 유적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추세다.
◆가야산 정견모주, 가야를 잉태하다
가야산 깊은 골에 여신이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모를 지녔고, 기품은 성스러웠다. 가야산 여신이었다. 여신은 가야의 땅에서 인간이 살기 좋은 터전을 가꿔주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여신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소원을 빌었다. 가야산에서 뿜은 기운은 널리, 더 높이 퍼져나가 하늘에 닿았다. 하늘도 이 정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3, 4세기 어느 날 하늘신이 오색 꽃으로 치장한 가마를 타고 강림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가야산 중턱에 하늘신이 내려앉았다. 바로 '가마바위(일명 상아덤)'였다. 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와 천신 이비가(夷毗訶)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가야 건국의 모태가 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와 감응해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왕 뇌질청예를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뇌질)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라고 적고 있다.
산신 정견모주와 천신 이비가가 감응해 낳은 큰아들이 뇌질주일, 즉 대가야 1대 이진아시왕이고, 동생이 뇌질청예, 즉 금관가야의 초대 김수로왕이다.
◆가야의 젖줄과 철, 위력을 과시하다
가야산 북쪽 경사면에서 흘러내린 가천(가야천)과 가야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야천(안림천)은 대가야의 젖줄이다. 두 하천은 각각 합천과 성주에 기름진 땅을 적셨고, 고령읍에서 만나 회천을 이룬다. 회천은 대가야인들이 도읍지 고령에서 논밭을 이루며 정착할 수 있는 터를 제공했고, 남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조선시대 '택리지'는 "가야천 유역 고령, 성주, 합천 등은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씨 한 말을 뿌리면 120~130말이 나오며 적어도 80말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농업용수가 풍부해 한재를 겪지 않는다"고 했다. 대가야의 기름진 토양과 풍부한 생산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농업생산력과 함께 가야의 또 다른 강력한 힘의 원천은 철이었다. 초창기 가야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유리한 해양조건을 바탕으로 철 생산과 교역을 주도했다. 300~40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가야는 합천 야로의 철산지를 확보하면서 갑옷과 칼, 농기구 등 철제품을 대량 생산, 보급하면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게 된다.
◆야광조개국자와 남제 사신, 대외로 뻗어나가다
삼한시대 마한이 백제로, 진한이 신라로 전화했다면 '철의 강자' 변한은 가야로 발전했다. 가야는 기원후부터 대가야가 멸망한 6세기 중엽(562년)까지 한반도 동남부 일대에서 맹위를 떨쳤던 세력이었다. 특히 고령 대가야는 현재의 김해(금관가야), 함안(아라가야), 창녕(비화가야), 합천(다라국), 진주(소가야) 등 경남 서남부와 남원, 장수, 진안 등 전북 일대까지 세력권이 미쳤다.
고령 지산동 44호 고분에서 출토된 야광조개국자는 일본 오키나와 주변 해역에서만 나오는 조개로, 국자 형태의 유물로 만든 시기는 400년대에서 600년대 사이이다. 고대 대가야와 왜의 교류 흔적을 방증하는 대표적 유물이다.
479년 대가야 하지왕은 중국 남제에 사신을 보내 '보국장군본국왕'이란 작호를 받았다. 이는 중국 '남제서' 동남이전 가라국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가야는 왜와 교류하며, 신라, 백제와 대등하게 중국에 별도로 사신을 파견했다는 점에서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숱한 유적과 유물, 관광자원으로 거듭나다
고령 대가야의 유적과 유물은 왕릉전시관, 대가야 박물관, 대가야 테마공원 등으로 재현되거나 보존되고 있다.
고령은 또 양전리 암각화를 비롯해 안화리 가면모양 암각화, 산당'하거'화암리의 별자리 암각화, 봉평리 무기류 모양의 암각화, 지산리의 인물모양 암각화 등 국내에서 유례가 드문 '암각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고령군은 내년에 20억원을 투입해 이 일대 유적지를 정비하는 등 공원화할 계획이다.
특히 경북도는 2016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2천여억원을 투입해 고령 회천변 일대를 대가야 교류지구, 대가야 건강휴양지구, 대가야 고대생활사 체험지구 등 3개 지구로 구분해 가야국 역사루트를 재현하고 연계자원을 개발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원 경상북도 관광진흥과장은 "가야의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관광콘텐츠로 개발하는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사업을 통해 가야의 역사문화가 관광수익 창출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대가야 1대 이진아시왕
(사진) 1~3. 대가야의 도읍, 고령을 둘러싸고 있는 지산동 고분군. 주산 주능선을 따라 대가야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까지 2천여기가 몰려있다.
4. 가야산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가가 감응해 대가야의 1대 이진아시왕을 낳았다는 가야산 중턱 가마바위(일명 상아덤).
5.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대가야의 철갑옷과 투구는 철을 바탕으로 한 가야의 힘을 상징하고 있다.
6. 고령 지산동 44호분에서 나온 야광조개국자는 가야와 왜의 교류를 방증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일본 오키나와산 야광조개, 복원한 야광조개국자, 44호 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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