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 얼마만큼 속이 깊이 잘 익었느냐의 차이에 따라 '연시'와 '땡감'으로 명칭이 달라진다. 오랫동안 햇볕을 쬐고 비바람과 서리를 맞아 단단함을 삭이고 떫음도 삭여 깊은 풍미를 지닐 때 '연시'라고 불린다. 반대로 똑같은 감나무에 달려 있으면서도 겉모양만 감 형세일 뿐 속이 설익어 딱딱하고 떫은맛을 못 삭여낸 감을 '땡감'이라고 한다.
불가(佛家)에서도 붓다의 가르침을 바로 깨치고 중생의 표상이 되는 승려는 큰스님이라 높여 부르지만 도(道)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채 경망하고 속이 덜 찬 경우를 '땡중'이란 속어로 낮춰 부르고 있다.
정치판이 요동치는 요 며칠 새 불교계와 중생들 간에 재미난 퀴즈거리가 하나 생겼다. 어떤 정치색 짙은 승려를 두고 '큰스님'이라 해야 마땅할지 '땡중'이라고 불러야 옳을지라는 문제다. 주인공은 서울 강남 한복판 큰 사찰의 주지였던 명진 스님이란 분이다. 그분을 어떻게 불러야 옳을는지 해답을 내기 위해서는 먼저 언행부터 살펴본 뒤 따져야 공정할 것이다.
그분이 최근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는 책을 내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빗대 '퇴임 후 남대문에서 빈대떡 장사나 해라' '쥐구멍에나 들어가라' '뼛속까지 친미(親美)라니 국산 쥐는 아닌 듯' '알고 보니 전과자에 사기꾼' '내각은 잡범 집단, 청와대는 우범 집단' 등의 표현을 했다고 한다.
책의 부제(副題)까지 서이독경(鼠耳讀經=쥐 귀에 경 읽기)이라고 붙였다. 그 스님이 욕했듯이 물렁한 내치(內治)나 고'소'영 내각, 사저 신축 등 마땅찮은 실정(失政)들은 분명 적잖았다. 그런 MB 정부를 조금도 두둔하거나 감쌀 생각은 없다. 잘못한 건 맞으니까. 그렇다고 그 스님의 절제 안 된 언어까지 옳다고 동조할 수는 없다.
언제부턴가 나라가 어수선한 위기 속에서 극소수 종교인들이 제주 해군기지나 무슨 콘서트 같은 데 나서서 정치에 끼어들고 국책을 흔드는 '일탈'이 당연한 일처럼 돼 간다. 그런 와중에 명색 가사(袈裟)를 입은 성직자가 자국 대통령을 사기꾼이나 쥐에 비유하고 정부를 잡범 집단으로 매도한 입 가벼운 언행은 비록 그분이 불가의 지도자라 하더라도, 아니 지도자라니까 더더욱 따져 둘 필요가 있다.
그 스님이 불가에 든 지 몇 년이나 되는지 모르나 '비방만 받는 사람, 칭찬만 받는 사람, 없었고, 없고, 또 없을 것이다. 칭찬도, 비방도 속절없나니 모두가 다 제 이름과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란 법구경(法句經) 정도는 아실 것이다.
그가 책을 내면서 '제 이름, 제 이익을' 생각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법당에서 향(香) 올릴 때 '내 마음에 어지러움이 없으면 남의 착함이나 악함을 보아도 분노가 일어나지 않고 선과 악 그 자체조차 생각 않는, 걸림 없는 경지가 큰스님이 다다라야 할 경계'라는 오분향(五焚香)의 뜻을 깨치면서 올리는지 아닌지 또한 알 수 없다. 어느 쪽이었든 '쥐 욕설'은 오분향의 수행이 그릇됐음을 보여준다.
그분은 마치 '수레가 굴러가지 않을 때 수레를 때려야 옳은지, 소를 때려야 옳은지'를 모르는 미완(未完)의 수행자 같아 보인다. 이 난세에 종교 지도자가 지녀야 할 소명은 중생에게 '소를 때려야 수레가 가는' 깨달음을 솔선해 보이는 것이다. 소는 '쥐 대통령'이 아니라 민심이고 정의다. 강하고 바른 법치, 정의로운 판결, 비폭력적 논쟁과 상생의 화합이 세상을 바로 끌고 간다. 그래서 수레 아닌 소를 때려야 하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가 중생보다 더 저속한 선동적 비속어를 내뱉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예불 향을 피우고, 군 기지에 나가 갈등이나 부추기면 세상은 종교도 치유하지 못하는 어지러운 세상으로 굴러 떨어지게 마련이다.
명진 스님도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머무실 때 바르다 와자라는 브라만 귀족으로부터 온갖 욕설을 다 들었던 일화를 알 것이다. 그때 붓다는 "당신은 욕하고 꾸짖고 악담을 했습니다. 그것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음식을 함께 먹지도 주고받지도 않겠소. 그러니 욕설은 모두 당신 혼자 것이 되오"라고 했다.
가사를 여미고 붓다의 이 말씀을 묵상해 보시라. 만약 한국이란 수레가 잘 안 굴러가는 이유가 소 탓이고, 브라만의 욕설은 브라만 자신에게 돌아감을 깨친다면 당신은 큰스님이시고, 나라 꼴을 수레 탓으로 알고 계속 욕설이나 해야겠다고 한다면 그대는 '땡중'이 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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