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쓰는 악상기호 중에 '늘임표'라는 것이 있다. 특정 음표 위에 있을 때 그 음의 길이를 2, 3배 늘여서 연주하라는 표시다. 원어로는 '페르마타'(Fermata)라고 하는데 이탈리아 말로 '정거장'이란 뜻이란다. 원어로 보면 소리를 내는 상태에서 쉬어 간다는 것이고, 그래서 반대말은 '줄임표'가 아니라 듣기에도 바쁜 '스타카토'라고 한다.
정지용의 시에 채동선이 곡을 붙인 '고향'에는 유난히 늘임표가 많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포근하기 때문에 한층 더 한가로운 고향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란다. 사람들이 일생을 다하고 영원한 안식처로 택하는 곳도 주로 고향인 것을 보면 고향과 휴식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닌 모양이다. 어떻든 소크라테스도 "한가로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고 했다.
요즘 여러 가지 일을 맡아서 쉴 사이가 없을 정도인데 무엇인가를 자꾸만 잊어버린다. 친지들이나 유명인들의 이름도 갑자기 잊어버리고, 우산은 가지고 나가면 두고 오기가 일쑤다. 얼마 전 무심코 TV 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의 하는 짓이 나와 너무 비슷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보니 치매환자의 이야기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래서 그런 쪽의 전공을 가진 동료를 찾았더니 내 수준에 딱 맞게끔 설명을 해준다. 우산을 가져온 사실을 잊어버리면 건망증이고, 우산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를 잊어버리면 치매란다. 덧붙여 원인까지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비롯되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원인을 알고 나면 치료 방법은 자연스레 뒤따르는 것이 의학의 본질이다. 가장 쉬운 치료는 당연히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예방의학의 개념에까지 이르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생각을 없앨 수가 있을까? 많아서 줄인다면 어떤 생각부터 없애야 하나? 그래서 여기저기 자료를 찾다 보니 반가운 구절이 눈에 띈다. '머릿속을 괴롭히는 생각이 있다면 과연 그것이 5년 후에도 중요할 것인가 생각해보라. 만일 그렇다면 과감하게 대처하고,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잊어버리라.'
대략 기준이 마련되었다고 만족하는데 문득 수집한 자료 중에 충격적인 구절이 있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는데 바로 '생각 중지 훈련'이란 것. 훈련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벽을 마주하고 머릿속으로 '생각 중지!'라고 외치는 것이란다. 2주 정도만 연습하면 10분 정도 생각을 중지할 수 있다는데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아무튼 휴식이 우리 몸과 마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자신조차 잊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옳게 쉴 줄 모르는 우리의 습관이 IMF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달력을 보면 한 주는 대부분 일요일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주는 의미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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