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문단의 뜰에 서서

입력 2011-12-10 07:29:30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이 지면을 빌려서 문화, 경제, 정치, 교육 등 여러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되짚어보는 글을 써왔다. 그러나 유독 문학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이유는 문학이 필자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분야여서 객관성을 잃을까 두려워서이고 또한 껄끄럽기도 해서다.

아시는바, 문단(文壇)이란 문학하는 사람들이 모인 유'무형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창작하는 이들의 일정한 연대감을 무형의 문단이라고 한다면, 유형의 문단은 대개 문학잡지와 문인들이 관계하는 크고 작은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문학인협회나 출판사를 꼽을 수 있고, 언론사 문학 담당 라인도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책의 간행, 세미나, 시낭송회, 문학상 등을 개최하여 문인들 간의 우호와 독자와의 교감을 넓히게 된다. 특히 문학상은 그 단체가 갖는 문단 내에서의 역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대중문학과 다르게 본격문학은 독자들과의 거리가 다소 멀어서 작품의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은데, 문학상이란 제도가 이를 보완하여 그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문단과 독서계 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각종 문학 단체들은 앞다투어 문학상을 제정하는바, 작품의 우수성을 가리는 본래의 책무를 벗어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일부 심사하시는 분들의 태도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심사자의 위치는 결코 명예롭거나 권력적인 자리가 아니다. 그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문학성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할 어려운 처지일뿐더러, 문단 내부의 의심스런 시선을 받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안목이 독자로부터 재심사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작품을 쓴 동료 문인의 문운(文運)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다소 과장하면 저주스런 행위를 감당해야 하는 자인 것이다. 하지만 일부 심사자들은 명예로운 판관(判官)쯤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듯하다.

심사자를 선택하는 단체의 태도도 이상하다. 근년의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상금을 내걸고 공모한 어느 문학상에 심사하러 나간 한 작가는, 같은 심사장에 나온 작가가 작품은커녕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분이라서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심사자를 멋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단체의 태도를 엿볼 수가 있다. 요즘 주요 문예지들은 신인을 뽑을 때, 심사자들이 그 경위를 10여 쪽이나 될 정도로 세세히 밝혀 독자로부터 자신의 안목을 재심사받고 있는데, 이는 많은 문학상들이 수긍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임이 분명하다.

이야기를 우리 지역으로 돌려보자. 특이하게도, 지역 문단은 중앙 문단의 축소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선 문협(문인협회)만 거론해도, 그 차이는 확연하다. 중앙 문협 격이 되는 한국문협은 한국 문단에서 그 역할이 아주 제한적이다. 문협은 주요 문인들을 영입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성공했다는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이러한 일들은 거론하기가 민망할 지경인데, 그러나 지역 문협은 다르다. 한국문협의 지회인 대구문협만 해도, 대구에 사는 거의 모든 문인들이 문협에 참가하고 있을뿐더러, 가령 한국 문단에서 실질적인 영토를 가진 뛰어난 시인들도 대다수 문협 평회원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대구문협이 소유한 전통의 산물이기도 하거니와 앞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거침없이 수행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최근 대구문협은 차기 집행부를 이끌 수장을 사실상 결정하였다. 차기 집행부는 1천 명에 육박하게 된 문협 회원들의 다양한 바람에 귀 기울여야 할 테고 그것을 최대한 소화할 책임까지 맡게 되었다. 대구문학관 건립, 출판단지 등 여러 외적 사안들도 놓여 있을 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협이 전문 문인들의 집합체라는 기초적 인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기관지의 전문화된 편집부터, 깊이를 가진 각종 세미나나, 친목을 위한 행사들, 문학상 제도 등에서 전문인들의 집합체에 걸맞은 운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문인들은 누구나 일생을 걸고 좋은 작품을 낳으려고 사투를 벌인다. 같은 땅에 사는 문인들이 한 자리에 어울려, 인고(忍苦)의 축적물인 작품을 나누고 작품을 쓰는 동안의 고뇌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자리가 바로 문협이 된다면, 가장 멋진 공동체가 아니겠는가.

엄창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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