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기능올림픽 은메달 획득
"저는 은메달리스트지만 우리 회사와 직원들은 금메달리스트로 만들 겁니다."
㈜신독엔지니어링의 박종안 대표는 1971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경북지방 기능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박 대표는 "3학년 때 참가했다면 금메달도 딸 수 있었다"며 "그때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것이 내가 기능을 계속해서 갈고닦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인문계 진학을 포기하고 공고에 입학한 박 대표는 당시 선생님의 권유로 학비가 면제되는 기능훈련생을 시작했다. 공고 졸업 후 코오롱에 입사한 그는 입사 3년 차에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코오롱 생산성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입대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박 대표는 제대 후에 영남대 기계공학과에서 만학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 다니며 정교사 자격증을 딴 그는 졸업 후 대중금속공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신독엔지니어링을 설립한 이유는 기능에 대한 열정과 자신이 받은 도움을 지역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그는 "기능인으로서 꿈을 펼치고 싶었고 나와 같은 생각의 젊은이들을 위한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며 "1992년 기계부품제작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가 세운 신독엔지니어링은 1997년 선진국 수준의 차체 용접 자동화설비 기술을 개발해 세계시장에서 한국 차를 성장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회사의 안정과 함께 박 대표가 눈을 돌린 것은 인재 양성이다. 회사를 창립한 첫해부터 직원들을 기능올림픽에 출전시켜 4년 연속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해냈다. 박 대표의 기능인 양성 능력을 믿은 대구시는 올해 그를 대구시 기능경기위원회 기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놀랍게도 박 대표가 위원장이 된 올해 대구시는 전국 기능경기 대회에서 46년 만에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기능인으로서 박 대표의 경영철학은 자율과 위임이다. 직원들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는 "우리 직원들은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며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 인재들이다"고 자랑했다.
점점 기능인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아쉬워하는 박 대표는 앞으로 기능인들이 어깨를 펴고 일할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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