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천일의 약속' 가슴 아픈 사랑 김래원

입력 2011-12-08 14:10:26

말 줄임표 많은 대사 감정몰입이 가장 힘들죠

욕을 참 많이도 먹었단다. 주변 지인들은 물론, 친여동생도 그에게 "절대 지형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싫은 소리를 했다.

배우 김래원(30). 지난 8월 23일 소집해제되자마자 그가 선택한 작품은 김수현 작가가 쓴 SBS TV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이었다.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정혼자를 놔두고, 결국 치매에 걸린 여성을 선택한 남자. 그런 선택까지 갈팡질팡한 그의 마음을 시청자들은 이해하기 힘들었고, 지형을 향해 욕도 한 바가지쯤은 해댔을 거다.

극 초반 한정된 표현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해야 했다는 그.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언제나 감정을 자제하고 억눌러야만 했다. 김래원은 "내가 지형을 연기했지만 초반 지형은 정말 답답했다"며 "왜 단칼에 결론을 내리지 못할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저 같으면 향기(정유미)에게 가든, 서연(수애)에게 가든, 아니면 둘 다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답답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이해해요. 조금 늦긴 했지만 지형은 정확한 친구니까요."(웃음)

고된 녹화 탓인지 힘든 티가 역력했다. 인터뷰 바로 전까지 촬영을 하고 왔다는 그는 여전히 극중 지형 같은 모습으로 극에 몰입해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하는 지형으로만 바라보면 힘든 것 같아 실제 김래원의 모습과 지형을 섞어서 바라봤다. 그러니 조금은 현실적이기도, 또 조금은 이상적이기도 한 그가 보였다.

"드라마는 3년 6개월 만에 하는 거네요. 예전에 드라마 '눈사람'에서 비슷한 사랑 연기를 했어요. 그때는 22살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무거운 이야기라 초반에는 힘도 많이 들어갔죠. 그래서 부담도 되고 힘들었어요."(웃음)

그는 특히 말줄임표(…)로 돼 있는 자신의 대사가 적힌 대본과 "서연아"라고 부르는 대사가 유난히 많았다고 했다. "향기를 밀어낼 때도 '점점점'(…) 이거나 '향기야'라고 하는 말뿐이었어요. 터져나오는 것을 참고 연기해야 해서 힘들었죠. 만족하지는 않지만 그 감정을 잘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으나 그는 충분히 섬세한 연기를 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수현 작가를 만족시켰다. 김 작가가 "보기보다 섬세하다. 여우 같다. 영악하다"고 했을 정도.

"칭찬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무래도 여배우 감정이 중요한 장면이 많아서 (김수현) 선생님이 제 대사에는 '점점점'을 넣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 아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제가 필요했던 것 같은데 제가 그 '점점점'을 다 해버렸나 봐요."(웃음)

총 20부작인 '천일의 약속'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초반에 서연의 이야기가 중심이라 지형은 주목받지 못했다. 치매에 걸려 분노를 표하는 수애와 저런 캐릭터가 있을까 할 정도로 너무 순수한 '오빠 바라기' 정유미가 더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종영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이제는 지형을 바라보는 시점이 하나 더 생겼다. 지형의 지고지순하며 헌신적인 사랑이 시작된 것. 지형은 서연만을 위한 남자가 됐다.

김래원은 "힘들지만 '천일의 약속'을 잘 만난 것 같다"며 "섬세한 부분까지 표현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좋아했다. "진짜 선생님 작품 보고 팬이 됐어요. 그 주옥같은 대사 한마디 한마디, 또 서연이가 하는 내레이션들도 좋고요. 그런 표현들이 너무 좋아요. 이전까지는 솔직히 선생님 작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죠."(웃음)

그는 호흡을 맞추고 있는 수애에 대해서 "특정 포인트를 잡아 극대화시켜 표현하는 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잊지 않았다. 또 자신과 비교하며, "연기할 때 몰입의 강도가 상당하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극중 어머니로 나오는 선배 김해숙을 향한 애정은 더 깊다. 두 사람은 영화 '해바라기'(2006)에서 엄마와 아들로 출연하며 그간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이. '천일의 약속' 대본을 받고 연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결심을 하지 못할 때, 김해숙의 말이 그에게 도움을 줬다.

"김해숙 선생님이 '남자의 순애보니까 해보라고, 해볼 만하다'고 하셨어요. 제가 안 하면 선생님도 안 하신다고 하셨대요. 그 말이 힘이 됐어요. 선생님과는 '해바라기' 이후로 어머니와 아들로 지내왔고, 선생님이 김수현 작가님과 정을영 감독님과도 오랫동안 작품을 해오셨으니 그런 분의 추천이라면 믿을 수 있었죠."

김래원은 1997년 MBC 청소년 드라마 '나'로 데뷔 후, 약 15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25편 남짓의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많지는 않은 숫자다. 자신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웃어넘긴 그는 이제 더 활발한 활동을 위해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차기작도 거의 확정했다.

"'천일의 약속'으로도 연기를 향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서 바로 시작할 작품을 찾고 있어요. 영화를 하려고 하는데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인물을 해 보려고요. 작품을 선택할 때는 여러 가지 중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고르려는 편이에요. 원래 '천일의 약속' 전에 다른 작품을 하기로 했었는데 마음을 바꾼 거였어요."(웃음)

실제 김래원은 극중 비슷한 가슴 아픈 사랑의 경험이 있을까, 서연과 향기 중 실제로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 "20살 때쯤 비슷한 아픈 사랑의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는 그는 "내가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니라서 밝은 사람이 좋다"고 답하며 웃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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