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오토 클렘페러

입력 2011-12-06 10:58:46

옛날이야기.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이르러 지휘자 또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으로 갈라졌다. 아니, 좋아하는 척, 싫어하는 척했던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고등학생이 무슨 대단한 귀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냥 규모가 큰 음악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일에 전권을 거머쥔 지휘자가 작곡자나 작품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같이 자라난 허세였다.

브루노 발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같이 전설처럼 전해오던 지휘자들에 대한 막연한 추종은 단연히 있었고, 그것보다 내게는 당대에 TV나 신문, 잡지를 통해 행적을 가늠했던 현역 지휘자들에 대한 호불호가 더 심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나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냥 싫었다. 나는 칼 뵘이나 게오르크 솔티가 좋았다. 좀 더 현학적인 체하고 싶어져서 파들어 가니까 세르주 첼리디바케, 니클라스 아르농쿠르, 주세페 시노폴리도 좋아졌다.

좋아한 건지 좋아한 척한 건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좋아한 척하다가 정말 좋아지는 게 예술 수용에서 흔한 단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음악에 대한 평가는 영화감독에 대한 선호와는 좀 다르다. 뚜렷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남들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 나는 예컨대 미술애호가들이나 영화광들보다 음악팬들의 태도에서 속물적인 면을 더 자주 발견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조금 바뀌었다. 그 지휘자들 중에서 지금도 한결같이 좋아하는 사람은 주세페 시노폴리다. 이 연재 가운데 9월에 썼던 '변신' 편에서 언급했던 지휘자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한때 싫었지만 좋은 쪽으로 돌아선 지휘자다. 이 두 사람에 대한 내 애정은 다른 매체를 통한 글에 여러 번 밝힌 바가 있다.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내게는 그저 싫지도 좋지도 않고 심심한 음악가였다. 우리 집에 베토벤, 브루크너, 말러를 연주한 음반이 몇 장 있는 것도 같은데 지휘자를 고려해서 샀던 건 아니었지 싶다. 그의 연주가 왜 매력 없는지 생각해보니까, 일단 느렸다. 누구는 그걸 엄청난 흡인력이라고 하겠지만, 음악에 귀가 뚫리지 않은 내겐 답답할 뿐이었다. 그의 음악이 이렇게 느려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클렘페러는 음악에서 쌓은 경력만큼 굴곡진 인생으로 더 유명하다. 우리는 살면서 생사가 갈리는 고비를 한두 번씩은 겪는데 그는 달랐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그래서 이 전통 있는 신문 지면에서도 여러 번은 소개되었을 법한 그의 일대기를 내가 다시 한 번 끄집어낸다면 대략 이런 것이다.

1885년에 태어난 그는 20대 중반부터 독일의 여러 시립 악단의 지휘자와 음악감독을 맡으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늘 불안정한 피고용자의 위치에 있었고, 결정적으로 유태인이었던 그는 나치 정부에 의하여 축출되었다가 스위스로 간신히 도망쳤다. 그는 목숨을 건져 미국으로 건너 와서 지휘자 자리를 구했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련이 이어졌다. 그는 연주 도중에 지휘대에서 떨어져서 뇌종양 수술을 받았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오랜 기간의 재활을 거쳐 그는 헝가리에서 지휘자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리다가 굴러 떨어져 대수술을 받았고,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렇지만 앉아서 지휘를 하는 열정을 보이던 클렘페러는 지휘 도중에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러나 또 몇 년 후 그는 큰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 놀랍게도 몇 년 후 다시 재기한 그는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고혈압이 그를 또 한 번 쓰러뜨렸고, 이 또한 그는 이겨냈다. 1973년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난 그의 인생은 사고와 병과 재정적 어려움이 이어진 시간이었다. 내가 이 대단한 지휘자의 유별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건 '음악동아' 잡지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감동보다도 웃음이 앞섰다. 위대한 재활 의지와 음악에 관한 열정 앞에선 숙연해지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인 불행의 연속은 역설적인 희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이제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이 기획 칼럼에 지면을 허락받은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는 언젠가 한 해 끝 무렵에 연재 글이 실리게 되면 오토 클렘페러의 일화를 꼭 다루고 싶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못난 글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다. 그처럼 평생을 힘든 고비의 연속으로 보낸 사람도 있고, 순탄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올해도 살아남았다. 남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윤규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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