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땡처리 시장
5일 오전 대구 수성구의 한 상가 사무실.
사다리차 굉음이 울릴 때마다 뜯어 놓은 사무실 창문을 통해 수십 개의 박스가 도르래를 타고 넘나들었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5t 트럭과 2.5t 트럭에 한가득 쟁여 있던 100여 개의 박스가 260㎡ 남짓한 사무실을 빼곡히 채웠다.
까치발을 한 남녀 5명이 박스를 헤집자 옷가지가 수백 벌이 쏟아져 나왔다. 땡처리 옷이다. 옷 분류작업을 하던 김해경(32'여) 씨는 "(옷을) 계절별, 색깔별로 단시간에 선별하기 위해선 손은 얼지만 장갑을 끼지 않는다"며 노하우를 소개했다.
경기 한파 속 '땡처리 시장'이 뜨고 있다.
땡처리 의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의류 소매점에서 팔다가 남은 이월상품이나 의류업체의 부도로 나온 재고 물품들. 브랜드나 가격에 상관없이 박스떼기나 중량(㎏)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땡처리 옷은 구제옷과는 달리 손때가 묻지 않은 새 제품인 데다 단돈 몇 천원으로도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알뜰 주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날 들어온 3만여 벌의 옷도 가격표와 브랜드 라벨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새 옷이었다. 백화점, 대형마트에서 낯익은 브랜드도 즐비했고 명품 브랜드도 가끔 눈에 띄었다. 더미 속에는 120만원이란 가격표가 선명한 남성 코트 몇 벌이 섞여 있기도 했다. 땡처리는 분류 작업 때부터 인기 상한가다.
분류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입소문을 듣고 온 구제 상인과 땡처리 업자 사이의 즉석 흥정이 벌어졌다. 한 상인은 "오늘은 샘플만 봤는데 며칠 내로 땡처리 물건 3분의 1 이상을 구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문시장에서 구제옷 장사를 하는 동생을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땡처리가 매대에 나오기까지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 컨테이너 ㎏이나 장당 원가를 따져 나오는 탓에 뒤죽박죽, 구겨지기 일쑤고 중간중간 때타기가 다반사.
특히 경기가 죽어야 사는 땡처리라지만 물량 확보가 관건인 데다 중간 가공과정이 어렵고 재고 부담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초짜는 섣불리 땡처리 사업에 뛰어들지 못한다.
'묻지마 땡처리'도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
장동환(34) 씨는 "보통 옷 몇 만 벌을 찍는데 분류 매장 관리 등 땡처리 전문 인력을 쓰지 않으면 산더미 같은 재고를 떠안기 일쑤"라며 "로스가 큰 탓에 초짜는 함부로 덤빌 수 없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품질 차이가 커 가격도 잘 매겨야 한다. 최초 물건을 떼 올 땐 벌당 몇 백원에 지나지 않지만 인건비, 매장비, 재고 부담을 포함한 가격을 따져야 한다.
장 씨는 "상태와 디자인에 따라 가격의 10%를 받고 상태가 좋으면 최대 반값에 날리기도 한다. 재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량의 상당 부분은 도매로 넘기고 팔다 남은 옷들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수출 루트도 사전에 뚫어 놓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땡처리 된 옷은 선별작업을 거쳐 다음 주부터 구미시 북삼동에 반짝 매장을 열 예정이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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