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소통이 안될 땐

입력 2011-12-05 11:00:39

'일산(日傘'햇볕 가리개)과 부채를 쓰지 않은 임금. 벼가 잘 되지 못한 곳에선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묻고, (가슴이 아파)점심을 들지 않고 돌아온 임금.'(세종) '지나간 곳의 백성들이 지고 있는 묵은 환곡 중에서 문서에 실려 있는 것은 원근을 논하지 말고 문권(文券)을 불태우고, 행차가 지나간 지방의 벼가 혹 짓밟힌 곳이 있으면 해당 도(道)로 하여금 곡식 소출(所出)의 수량만을 환산해 주도록 한 임금.'(정조)

조선 27대 왕 가운데 누구보다 잦은 궁궐 밖 행차로 민심을 살폈던 임금은 세종과 정조이다. 세종은 재위 32년간 60회를 기록했다. 정조는 24년 재위동안 64회였다. 해마다 2, 3차례였다. 물론 온천에 갔거나 선왕 묘를 찾기도 했지만 어떤 왕보다 세상 밖 행차로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했다.

정조를 이은 순조는 34년간 16차례만 도성 밖 행차를 했다. 백성과 소통부재는 이후 계속됐다. 조선은 이때부터 사실상 기울기 시작했다. 소통부재 속 백성들 사이엔 '정조는 독살됐다' '시운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성세(1800년)가 되면 인천과 부천 사이에 천척의 배가 밤에 정박할 것이다' '순조가 죽었다'는 등의 유언비어와 괴소문들이 퍼졌다.

조정은 '참서(讖書'예언서)와 요서(妖書'요사한 내용의 책) 요언(妖言'요사한 말)을 만들어 전파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킨 자는 모두 참형에 처한다'는 법으로 엄벌했다. 애꿎은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조정은 수렴청정, 세도정치, 당파, 부정부패로 썩어갔다. 민심은 이반됐고 고달픈 것은 백성들이었다.

지금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대통령 측근이 부정과 비리로 잇따라 사법처리되고 있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살길 찾아 이합집산이 한창이다. 법조계는 한미FTA를 둘러싸고 판사간, 판사'검사간 공방전이다. 검찰'경찰은 수사권 '밥그릇' 싸움에 정신없다. 검찰 비리도 터지고 있다. 언론계는 종편 특혜시비로 연일 시위다. 국회는 한미FTA로 식물국회가 된지 오래됐다. 한미 FTA찬반 시위, 유언비어, 괴담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소통부재가 원인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소통에 아쉬움이 있다"고 비판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소통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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