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장철 농수산물 도매시장 가보니
30일 오전 9시 대구 북구 농수산물도매시장. 채소 경매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배추 수천 포기가 쌓여 있었다. 경매사가 쌓인 배추 앞에서 '650개'라며 해남배추 650망의 경매를 시작하자 경매 전광판에는 1망당 800원을 의미하는 '800'이라는 숫자가 떴다. 경매사는 "그래도 천원은 줘라"며 핀잔을 주지만 경매 참가자들은 꿈쩍도 않았다.
다음 배추 무더기 앞에서 경매사가 다시 경매 시작을 알렸지만 이번에는 가격을 제시하는 참가자가 아예 없었다. 경매사는 계속해서 배추 앞에서 경매를 진행했지만 참가자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나 양배추나 양파를 살폈다. 결국 3포기들이 650망의 배추는 낙찰되지 못한 채 경매가 끝난 도매시장에 남았다. 배추를 가져온 중간상인들은 배추 곁에 서서 담배만 피워댔다. 한 중간상인은 "가지고 오는 가격에 손해를 보고 팔아도 안 팔리는 판이다"며 "하루 묵혀 두고 내일 경매에서 팔아야 한다"고 한숨 쉬었다.
지난해 비싼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팔았던 배추가 올해는 헐값에도 팔리지 않아 농민과 중간상인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김장용 배추 재배면적은 지난해 배추 파동의 영향으로 13%가량 늘었다. 김장용 배추의 생육기간인 8월 말 이후 석 달간 기상조건이 좋아져 배추 농사가 풍년이 들면서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23%나 많아졌다. 평년과 비교해도 7%가량 생산량이 늘었다.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가격은 하락했다. 지난해 김장철 3포기에 1만원 이상 호가하던 배추가격이 올해는 가장 좋은 상품이 3포기 2천원대로 5분의 1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이날 경매에서는 가격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해남배추 특품의 가격이 3포기 1천800원이었고, 대부분이 1천원 안팎의 가격을 받았다. 정부와 농협이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배추밭을 갈아엎어 가격 하락을 막고 있지만 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져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도매시장에 나오는 배추 물량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었다. 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이 있는데다 배추를 출하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수확을 하지 못하고 있는 농가들도 많기 때문이다.
물량은 줄었지만 가격은 내렸다는 것은 재고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도매시장 상인들은 "김장을 담그는 가정이 갈수록 줄고 올해는 특히 양념류가 크게 뛰면서 지레 겁을 먹고 김장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아서 배추가 더 팔리지 않는다"며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 재고는 늘고 지난해보다 물량이 적어도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이 떨어지기는 무도 마찬가지다. 이날 경매에서 10㎏ 무 한 박스가 3천600원에 거래됐고 경매를 원하는 참가자들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상인들은 배추의 우거지와 무청에 관심을 보였다. 잘 말려서 팔면 배추 한 포기의 가격보다 그 배추에서 나온 우거지 가격이 더 비싼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효성청과 김형수 계장은 "경매에 실패한 배추는 다음날 경매에 나가 대부분 처리되기는 하지만 중간도매인들도 배추 소비가 원활하지 않아 배추 사기를 망설이고 있다"며 "올해 배추농사로 실패를 본 농가들이 내년에 다른 농사를 지으면 또 지난해 같은 배추 파동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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