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잃은 대학생 딸 "아빠는 그냥 못 보내요"
은미(가명'23'여) 씨는 5년 전 대학에 입학한 후 줄곧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형마트에서 물건 팔기, 커피전문점, 기업 사무보조까지 5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다.
"서울에서 살면 방세가 기본 30만원이에요.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생활비와 책값을 마련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해요."
중학교 때 세상을 떠난 엄마와 아픈 아빠, 은미 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불평하기보다 환경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버지의 간이식 비용 2천600만원 앞에서는 은미 씨의 '긍정의 힘'도 빛을 잃고 만다.
◆일찍 철이 든 딸
29일 오후 대구 남구 한 대학병원 앞 벤치. 청바지에 운동화, 커다란 가방을 멘 은미 씨의 겉모습은 영락없는 대학생이다. 한참 취업 준비와 기말고사로 바쁠 시기지만 은미 씨는 한 달 넘게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한 것도 아빠 병간호 때문이다. 은미 씨 아버지 송주호(56) 씨는 10년 전부터 간경화로 병석에 누워 지냈다. "아빠가 원래 B형 간염이 있었는데 건강관리를 잘 못해서 간경화로 악화됐어요. 맨날 입에 약을 달고 사셨죠." 은미 씨가 어릴 때 아버지는 대구의 자동차부품공장에서 맞교대 근무를 했다. 아버지가 돈을 벌 때는 경제적으로 크게 궁핍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은미 씨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잦은 야간 근무로 건강이 악화됐고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은 뒤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퉜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엄마는 대구에 있는 미용실에 취업을 했고, 아버지는 은미 씨와 규민(가명'19) 씨를 데리고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갔다. 엄마의 소식은 연락이 서서히 뜸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이었어요. 그때,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만 알려줬을 뿐 왜, 어떻게,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내를 앞서 보내야 했던 슬픔 때문이었을까. 남은 가족들 사이에서 '엄마'는 금기어였다. 은미 씨는 성인이 된 뒤 엄마가 간경화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억척 대학생 은미 씨
은미 씨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제법 잘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아빠는 "대학은 꼭 가야 한다"며 그를 지지했다. 은미 씨는 2007년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한 학기 300만원이 넘는 등록금, 매달 고시원비 30만원과 서울의 고물가는 은미 씨를 힘겹게 했다. 지금까지 7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미 씨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아픈 아버지한테 생활비를 달라고 하기도 미안한데 등록금까지 바라는 것은 철없는 짓이었다. 지금 은미 씨 앞에 남은'현재의 빚'만 2천만원이다. "학자금 대출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나중에 취업해서 갚으면 되니까요. 지금은 아빠 건강이 제일 걱정이에요."
은미 씨는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예천에 내려갔다. 친할머니(87)가 돌봐주긴 하지만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돼서다. 그가 고등학교 때 지켜본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가 죽음의 고비를 넘나든 적이 있었다.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는 지난달 간성혼수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갔고 이제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생명을 나누는 부자(父子)
병원 관계자들은 은미 씨에게 "아버지에게 간 이식을 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가 아빠한테 간을 이식할래요." 아빠와 혈액형이 같은 은미 씨가 먼저 나섰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체구가 작고 여자인 은미 씨보다 아버지와 체격이 비슷한 남동생이 간을 이식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권유했다.
"차라리 내가 간 전부를 아빠한테 떼주고 싶었어요. 동생한테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는데…." 현재 군대에서 복무 중인 규민 씨는 간 이식을 위해 휴가를 내고 대구에 왔다. 규민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권 사립대에 합격했으나 학교 등록도 하지 않은 채 곧장 군대에 갔다. 자신이 2년간 군대에 있으면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덜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취재진이 은미 씨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규민 씨의 간 70%가 아버지에게 이식되는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대 3개월을 남겨둔 규민 씨는 이제 30%의 간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이식 수술 비용이다. 입원비를 제외하고 이식 수술비만 순수하게 2천600만원이다. "그래도 우리 아빠 살리는 비용이잖아요. 이 돈이 없으면 우리 아빠가 죽을 것 같아서 '빨리 수술하자'고 아빠를 설득했어요." 간이식을 위해선 병원에 예치금 명목으로 1천500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갑작스레 목돈을 구할 수 없었던 은미 씨는 친할머니집 전세금 1천만원을 빼서 예치금으로 넣고 나머지 비용은 수술이 끝난 뒤 계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은미 씨는 수술이 끝나도 1천600만원을 구할 길이 없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생계급여는 총 16만원, 은미 씨가 아무리 열심히 알바를 한다 해도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은 최대 100만원이다. "내가 빨리 취업을 해야 우리 아빠도 보살피는데…." 은미 씨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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