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자작극

입력 2011-11-29 11:02:59

조선은 왕권이 강한 나라였다. 태종은 왕권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면 자신의 처남이나 세자의 장인도 가차없이 죽였다. 그러나 당쟁이 격화되며 왕권은 시들었다. 정조는 시든 왕권 강화를 위해 당쟁에 무관한 젊은 학자들을 발탁하고 키웠다. 김조순은 정조가 선택한 사람이었다. 정조는 자신이 아끼던 신하 중 가장 믿음직한 김조순을 예비 사돈으로 점찍었다. 그러나 정조의 급서 이후 김조순은 정순왕후 김씨와 벽파들의 표적이 됐다. 김조순은 목소리를 죽이고 몸가짐을 낮춤으로써 살아남았으며 그의 딸은 순조의 왕후가 됐다.

김조순은 관대한 사람이었다. 당쟁 철폐를 주장하며 시벽파의 싸움에 중립을 지켰다. 훗날 벽파의 숙청에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세도를 장악한 뒤에도 요직을 사양하고 영돈녕부사 등 명예직만 맡으며 직접적으로 야망을 보이지 않았다. 그 덕에 반남 박씨, 풍양 조씨와 달리 안동 김씨는 건재했고 결과적으로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불러왔다.

그에겐 이런 일화가 있다.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그의 집에 술 취한 사람이 찾아와 온갖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하인들이 붙잡아 몽둥이찜질을 하려 하자 김조순이 말렸다. 집안으로 들여 연유를 알고자 했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온 취객은 곧 죽어버렸다. 알고 보니 반대파들이 병에 걸려 곧 죽을 가난한 사람을 매수해 김조순의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라고 사주한 것이었다. 매를 맞고 죽으면 김조순을 공격할 구실로 삼고자 한 짓이었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김조순의 유연하고 관대한 면모를 보여준다.

광화문 시위에서 정복 경찰서장이 폭행당한 것을 두고 야권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자극해 폭행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의도적으로 꾸민 짓이란 주장이다. 폭행 사실은 인정하지만 폭력을 비판하기보다 '도발하고 선동한' 경찰을 비판한다.

폭력은 흥분에서 비롯된다. 당연히 주장의 정당성을 잃게 한다.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폭행을 유도했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스스로의 신중치 못한 처신을 드러낼 뿐이다. 자신만이 옳다며 남의 말을 가로막는, 비뚤어진 몇몇을 제외하면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영악하지도 우둔하지도 않다. 선동에 휩쓸렸다는 말은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든다. 누워서 침 뱉는 꼴이 아닌가.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