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22)오봉옥

입력 2011-11-28 09:27:52

제주 출신 승률 100% 두개의 최초를 쓴 투수

1992년 삼성 라이온즈는 67승2무57패(승률 0.540)를 기록하며 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삼성은 투수 오봉옥을 건지는 예상치 못한 소득을 올렸다.

오봉옥은 두 개의 '최초'를 만들었다. 첫 제주 출신 프로야구 선수로 프로 출범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승률 100%를 달성한 것이다. 그는 데뷔 첫해 믿기지 않는 대활약을 펼쳤지만 이후 더는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1992년 9월 16일. 태평양을 대구로 불러들인 삼성은 초반 4점을 앞서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그러나 잘 던지던 투수 이상훈이 5회 들어 급격히 무너지며 역전을 당했다. 그때 12승2세이브를 기록 중인 오봉옥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10승을 넘어섰고 규정투구이닝도 채워 승률왕을 예약한 상황이었다.

6회초 오봉옥의 실점으로 2점차로 벌어지자 삼성 타선이 폭발했다. 1점을 따라붙은 삼성은 7회 대거 4점을 뽑아 승부를 뒤집었고, 오봉옥에겐 승리투수 요건이 갖춰줬다. 8회 다시 2점을 보탠 타선 덕에 오봉옥의 어깨는 가벼워졌지만 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것은 승률 100%가 산산조각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은 오봉옥은 9회 마지막 타자를 잡고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13승2세이브. 승률 100% 달성이었다.

오봉옥은 야구를 늦게 시작했다. 고향 제주에는 야구부가 없었다. 1980년대 OB 베어스의 제주 전지훈련 모습을 보고,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지만 제주도에서는 불가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바닷가로 달려가 돌멩이를 던지는 것뿐이었다.

뭍으로 발을 디딘 제주 함덕고 1학년 수학여행. 오봉옥은 행선지 중 포함된 포항에 다다르자 교감을 졸라 포철공고 야구부 테스트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졸랐다. 일주일 뒤 오봉옥은 다시 포항을 찾았다. 오봉옥은 "공을 힘껏 던졌다. 그 공이 멀리 보이던 축구 골대를 넘어갔다. 그때 작은 탄성을 들었다"고 했다. 거리는 100m쯤 됐고, 오봉옥은 그 길로 짐을 싸 포항으로 왔다.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유망주가 됐고 영남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1년을 채우기도 전에 야구부를 뛰쳐나오고 말았다.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 소속을 버린 선수는 2년간 타 팀으로 옮길 수 없는 규정이 발목을 잡자 오봉옥은 입대를 선택했다. 야구는 잊었다.

30개월을 꼬박 채운 뒤 제주에서 밀감농사를 돕고 있을 때였다.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삼성 라이온즈 입단 테스트' 공고를 보는 순간 가슴이 마구 뛰었다. 마지막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3년 공백을 채울 시간은 3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날 오봉옥은 자신도 놀랄 만큼의 괴력을 발휘했다.

당시 삼성 투수코치였던 이선희 스카우트는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였다. 테스트를 끝내고 가려는데 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냥 가버릴까 했는데 깡다구도 있어 보이고 몸도 단단해 보였다. 몸도 풀지 않은 상태서 언더셔츠 차림으로 마운드서 던진 공이 처음에는 138㎞, 나중에는 140㎞를 넘었다. 누구냐 물었더니 오봉옥이라고 했다. 좋은 평가서를 써 김성근 감독에 줬고, 곧바로 계약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1992년 4월 28일 쌍방울과의 홈경기. 패전처리로 나선 오봉옥은 뒤늦게 터진 타선의 도움으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 그 후 이상하게도 오봉옥이 마운드에 오르면 팀이 승리했다. 전반기 15경기서 오봉옥은 6승을 챙겼다. 그러나 투구이닝은 32이닝에 불과했다.

김성근 감독은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승률 1위에 오르게 하려 승부와 무관한 경기에 투입, 규정투구이닝 채워주기에 나섰다. 승리는 계속됐지만 실력보다는 운 쪽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9월 4일 쌍방울전과 10일 OB전에서 선발 등판, 완투승과 완봉승을 거두며 당당히 실력을 입증했다.

위기도 있었다. 8월 26일 LG전서 3대3이던 2회 구원 등판한 오봉옥은 6회와 7회 각각 1실점한 뒤 9회초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1실점하고 김태한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김태한이 불을 껐지만 4대6으로 뒤져 마지막 공격서 점수를 뽑지 못하면 승률 100%가 날아갈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다시 한 번 오봉옥을 향해 웃었다. 잠잠하던 타선이 9회말 대거 3점을 뽑아내며 7대6으로 역전한 것. 그 덕분에 대기록은 완성될 수 있었다.

승률 100%는 오봉옥과 2002년 삼성 김현욱(현 코치'10승2세이브9홀드)만이 달성한 대기록으로 남아 있다.

오봉옥은 1995년까지 삼성의 마운드를 지켰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쌍방울과 KIA, 한화를 거친 뒤 2006년 시즌 후 은퇴했다. 2007년 고향 제주로 돌아가 제일중학교서 지휘봉을 잡고 있는 오봉옥은 "현역시절, 혼자 객지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탄 것 같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 고향은 1년에 한 번도 찾기 어려웠다. 아마 요즘 같은 환경이라면 좀 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아쉬움이 남은 선수 시절이었지만 오봉옥은 제주소년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강민호'고원준'김수완(이상 롯데) 등은 제주를 대표하는 '오봉옥 키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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