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 다물라." 한때 인기를 끌었던 사극 대사에서 회자됐던 말처럼 대구경북연구원(대경연)에 함구령(緘口令)이 내려졌다. 함구 대상은 대구경북의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경제통합이나 행정통합 등 시'도가 불편해하는 사안에 대해 외부에 코멘트조차 하지 말라는 원장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대경연은 대구시와 경북도가 공동으로 출연해 설립한 공공연구기관이다. 연구기능뿐만 아니라 대구경북의 협력강화를 위한 정책제안을 하고 이를 실행화하는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최근 5년간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첨단의료복합단지, R&D(연구개발) 특구의 지역 유치과정에서 대경연은 핵심 역할을 했다. 시도가 엇박자를 내거나 터무니없는 욕심을 낼 때는 거중 조정을 하고, 시도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압박'까지 하며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길잡이 역할을 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동남권 신공항 유치과정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내거나 시'도가 부담해야 할 각종 비용을 대며 지역 발전을 위한 견인차가 됐다.
그런데 요즘 대경연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상당수 연구원들은 대경연이 앞서서 경제통합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수단을 고민해야 하는데 외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도 협력 논의에서 언급조차 하지 말라는 것은 기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의아해하고 있다.
대경연 연구원들은 그나마 대구경북을 위해 일한다는 자존심으로, 또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 때문에 버텨왔는데 요즘 많은 회의가 든다고 털어놓고 있다.
시'도 공무원들도 최근 대경연의 역할에 대해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한때 너무 불편할 정도로 자기조직을 압박하며 좋은 방향으로 정책을 끌어가기 위해 노력한 대경연이었는데 요즘은 존재감조차 없다는 것이다.
지역의 또 다른 두뇌집단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대해서도 과학기술, 산업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평가가 갈수록 인색해지고 있다.
영남권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 산업의 심장부이지만 연구개발조직은 전체의 15%로 R&D 기능이 취약하다. 또 기업의 역외유출과 산업구조 고도화 지연 등의 위기상황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권 연구개발 거점을 지역에 설치해 산업혁신을 통한 지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DGIST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 DGIST의 중심축은 현장 기능과는 다소 떨어진 교육 기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DGIST는 설립 초창기의 신생기관으로서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원규제에 묶여 교수진 충원이 여의치 않고, 예산 뒷받침이 안돼 우수 연구원 영입도 쉽지 않다.
DGIST가 비록 국가기관이지만 KAIST처럼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역할만을 요구받고 있지 않다. 더 핵심기능이 돼야 할 것은 지역의 잠재력과 산업수요에 근거한 연구개발이 중심이 돼야 한다.
산, 학, 연, 관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는 지역혁신체제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연구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또 다른 대학이 되어서는 설립취지를 거스르는 것이다. 지역의 고만고만한 대학과 경쟁하라고 DGIST를 설립한 것이 아님을 구성원들은 알아야 한다.
지역위기의 핵심은 일자리 부족에 기인한 인재유출의 위기다. 우수인재가 역외로 유출됨으로써 지역기업이 침체되며, 이는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지역 전체에 영향을 주어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 때문에 우수한 일자리 창출로 지역외 우수인재 유치를 하고, 나아가 지역 기업을 활성화 시키는 현장 일체형 연구와 성과물을 내야 한다. DGIST의 현재 역할은 이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설립 본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 내일을 고민하는 기관이 많아야 대구경북이 성공할 것이다.
이런 작업의 선두에 대경연과 DGIST가 자리해야 한다.
이춘수/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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