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내가 꿈꾸는 작업실

입력 2011-11-23 07:00:58

일본의 무대미술가 '세노 갓파'가 각 분야 대가들의 작업실을 엿보며 이야기를 한 '작업실 탐닉-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다'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글에는 일본 출신 최고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스튜디오에서부터 '레이건 대통령'의 집무실까지 등장한다. 내용은 마치 지붕 뚫고 내려다보는 듯 생생한 일러스트와 함께 그 작업실의 작가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찾아낸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먼 훗날 다시 옮기게 될 새로운 작업실에 대해 상상하며 스케치를 한 적이 있었다.

수년 전,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K작가의 작업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분위기 있는 조명 아래 보이는 K작가의 멋진 모습과 한 벽면을 가득 메운 오디오 시스템들…. 그리고 작가의 대형 사이즈 작품들이 멋지게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지금 그는 빌 게이츠에게 선택된 유명한 작가이다. 그런 그도 10여 년 전에는 마땅한 작업실을 구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작가와 작업실이 항상 부러웠고, 먼 훗날에 내 모습에 대한 환상과 목표를 세우게 한다.

다시 대구에 돌아와서 작업실의 문을 여는 순간 덥고 갑갑했다. 필자는 10년 이상 같은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곳! 작가들이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과연 일생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일까? 그래서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런 작업실은 작가 저마다의 특성들을 지닌다.

푸른 빛 도시의 낯선 공간을 소박하게 표현하는 친구 H의 작업실은 교회였던 탓인지 무언가 엄숙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독창적이고 섬세하게 꽃과 정물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표현하는 친구 K의 작업실은 온통 꽃향기로 가득하다. '나는 집으로 간다'고 늘 외치지만 항상 술집으로 향하는 J작가의 작업실은 고독과 허전함이 보이지만 풋풋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Y작가의 작업실은 독특하다. 작업실의 문을 열면 어디선가에서 달려나오는 하얀 터키쉬 앙고라! 필자도 고양이와 함께한 적이 있다. 단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있는 게 다인데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 작업에 몰두하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게 될 때는 둘만의 언어로 소통한다. 하지만 내가 고양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의 이유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나는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정돈된 작업실을 원했기 때문이다. 주위가 정리정돈이 되지 않고 청결하지가 않으면 난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난 늘 새로운 작업실을 꿈꾼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한적한 도심 인근의 넓고 아늑한 작업실! 가을이 가는 어느 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작업을 한 후 외로워질 때쯤이면 지인들을 불러서 술 한잔에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는 날을 기대하면서….  

송 호 진 대구대 영상애니메이션디자인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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