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돌 맞은 인권위..독립성 확보 과제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을 한단계 높이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인권위가 출범 10돌을 맞았다.
국민의 정부에서 진통 끝에 탄생한 인권위는 참여정부를 거치며 발전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의견표명은 정부 정책에 반하는 것이었고 실현되지 못했지만 인권의 가치를 제도화하고자 만들어진 독립 기구로서 제 목소리를 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보수진영에서는 비난을 퍼부었고 진보진영에서는 더 나아가야 한다며 채찍질을 해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인권위는 위원들의 구성이 바뀌면서 '우향우'했다. 조직 운영에서도 민주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치 못해 독립성 확보가 과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태동부터 설립까지 갈등의 연속 =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인권기구 설립을 내세웠고 1998년 국제인권연맹 인권상을 받는 자리에서 인권위 설치와 인권법 제정 방침을 밝혔다.
인권위를 법무부 산하기구로 두려는 정부안에 인권·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면서 갈등 끝에 2001년 11월 독립기구로 발족했다.
인권위 규모를 두고도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최소한 40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행정안전부는 절반을 제시하면서 사무처는 2002년 4월에야 만들어졌다. 결국 정원 180명에 나머지는 파견직과 특수계약직으로 채워졌다.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 조사하는 인권위에 감시 대상인 경찰과 법무부 등 관계 기관에서 공무원을 파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는 결국 최근 경찰 파견 직원이 경찰 비위와 관련한 인권위의 내부 보고서를 경찰에 빼돌린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초대 위원장인 김창국 변호사가 외국출장 때 대통령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고 인권위는 독립기구임을 내세워 반발한 것은 초창기 인권위의 독립성을 두고 벌어진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성장과 위기 = 참여정부에서 인권위는 질적, 양적으로 발전했다.
인권위가 접수한 인권침해 사건 진정 추이를 보면 2002년 2천800여건에서 2004년 4천600여건, 2007년 5천여건, 2010년 6천400여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2003년 인권위는 이라크전 반대 견해를 밝히며 '헌법에 명시된 반전과 평화, 인권 원칙'을 준수해 이라크 파병안을 신중히 판단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고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국론 분열 행위'라며 인권위원장 사퇴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위는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라며 인권위 고유 업무의 독립성을 인정했다.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2004)와 사형제 폐지(2005) 권고,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입법 권고(2005) 등 굵직한 사안들도 이때 나왔다.
이후 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화하려 하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았다.
현병철 위원장의 취임 이후에는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가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 보수인사로 채워졌다.
매년 증가하던 진정 건수는 올해 상반기 20% 이상 줄었고, 인권위의 정책 권고 수용률도 2007년까지 56.3%를 기록하다가 현 정부 들어서는 46.9%, 31.6%, 33.3%로 계속 떨어졌다.
용산참사나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PD수첩 사건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전원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거나 기각됐다.
용산참사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조사관을 비롯해 10여명의 직원들이 회의를 느껴 사퇴했고 정책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김형완 인권정책과장도 업무에서 배제돼 결국 사퇴했다.
현 위원장은 취임 초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밝혔다가 번복하는가 하면 국정감사에서 '인권위는 행정부 소속'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인권위의 독립성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경란, 유남영 두 상임위원은 "인권위가 과연 어디까지 가는지, 추락의 바닥은 어디인지 지켜봤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고, 이어 조국 비상임위원과 전문·자문·상담 위원 60여 명이 집단사퇴했다.
인권상 후보자들이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수상을 거부하는 일도 벌어졌다.
◇'독립성 확보' 여전히 과제 = 인권위에 대한 비판은 독립성이 아직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평가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은 인권위 구성 자체가 독립성을 확보하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명목적이고 형식적인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인권위원을 지명하고 있다며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거나 잘못 박힌 국가기관이나 준국가기관이 인권위를 장악하기 위해 위원을 배정할 가능성이 짙다"고 지적했다.
11명의 인권위원은 대통령이 4명, 국회가 4명,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조백기 박사는 "대통령의 위원장 임명에 견제수단이 없는데도 대통령에게 위원 4명을 지명할 권한을 주면 독립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며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여당과 야당의 국회 내 의석비율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인권위원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규정이 인권위법에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를 개선하려면 인사청문회 도입,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국회 선출 몫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영선 전북대 교수는 인권위 독립성 강화를 위해 ▲무소속 독립기구'에서 헌법 기구로 위상을 높일 것 ▲시민·인권단체의 추천 등을 통해 인권위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높일 것 ▲설득력 있는 결정과 정책권고로 국민 신뢰를 얻을 것 등을 제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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