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귀남 할머니 결혼 며칠 전 약혼자 숨져 52년간 수절
"사람과 사람이 부부로 맺어지는 것은 하늘이 내리잖아요. 그래서 천생연분이란 말이 있는데, 난 그 사람이 아니면 시집 안 가요. 평생 간직해온 혼수품 죽을 때 가져가서 저세상에서라도 그 사람과 만나고 싶어요."
결혼을 며칠 앞두고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요절했지만, 그때 스치듯 했던 한 남자를 가슴에 품고 52년을 그리워하며 홀로 살아온 천귀남(73'안동시 평화동) 할머니의 사연이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안동시 정상동에서 출토돼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고, 절절한 사랑의 편지를 함께 묻었던 450여 년 전 원이엄마의 '사랑과 영혼'이 천 할머니의 삶으로 오버랩되고 있는 것.
천 할머니는 73세의 고령임에도 "나는 처녀래요"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21살 때인 1961년 북후면 옹천초등학교 인근에 살 때 육군대위였던 한 남자와 약혼을 하고 결혼 날짜를 받아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이었다. 혼수품을 준비하며 예비 신랑'신부는 서너 차례 만나 달콤한 신혼살림 꿈을 꾸었다. 안동역장과 옹천역장을 하던 천 할머니의 아버지가 사위를 삼고싶어 데려왔는데, 할머니의 맘에 꼭 들었던 듬직한 남자였다.
하지만 결혼을 며칠 앞두고 예비 신랑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아파 몇 날을 밤을 새우며 울었다. 밥도 넘어가지 않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그때부터 천 할머니의 홀로살기가 시작됐다. 몇 차례 중매가 들어왔으나 "나는 그 사람이 아니면 시집 안 가요. 나는 이미 그 사람과 하늘이 맺은 인연이잖아요"라며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예비신랑은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북한 출신 청년. 듬직하고 인물이 좋았다고 했다.
그 사람 아니면 혼자 살겠다는 그때의 그 마음은 청춘을 다 보낸 이후까지 변치 않았다. 옛날 젊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예쁘다며 시집가라고 말할 때마다 죽은 약혼남을 더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젊을 때는 하늘나라로 간 그가 보고 싶어 혼자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 사람 얼굴이 떠올라서, 죽은 그 사람이 불쌍해서, 지금은 많이 잊었지."
천 할머니는 52년간의 연정의 아픔을 곱씹듯 말이 어눌했다. 평생을 홀로 살면서 입을 닫아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 할머니의 유일한 말동무인 이웃의 금호댁(69)이라는 할머니는 "손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던 한 남자를 그리워하며 50여 년을 홀로 살아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들이 천씨의 사랑과 그리움을 알아야 해"라고 했다.
천 할머니의 여생은 살아온 삶만큼 힘겹다. 7만원의 노령 연금과 폐지를 주워 파는 게 수입의 전부다. 4년 정도 치료받고 좋아지는 듯했던 중풍 때문에 몸이 아파 폐지 줍는 일도 어려울 지경이다.
천 할머니의 약혼남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혼수품이 유일한 증거다. 지금도 장농 속에 당시 혼수로 준비한 옷과 이불 등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스무한 살의 아리따운 얼굴이 깊게 주름이 파일 때까지 애지중지 간직한 혼수품이 천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의 증표다.
폐지를 모았다가 천 할머니에게 전하는 안동 중앙신시장 어물전 주인 김남희(54'여) 씨는 "할머니는 가끔씩 약혼남에 대한 그리움을 탄식처럼 말할 때가 있어요. 할머니는 평생 홀로 산 자신의 삶이 불쌍하다는 말을 하지만 얼굴빛은 전혀 어둡지가 않아요"라 말한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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