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행나무 아래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비가 와서 단풍구경 가려는 계획이 외식으로 바뀌고 모처럼 텔레비전도 보고 낮잠도 자고 편안히 쉬어서인지 몸도 마음도 가벼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오니 은행나무가 노란 잎으로 물들어 모두 내려와 운동장에 앉아 있습니다.
세 어린이들이 은행잎을 줍고 있습니다.
"너희들 은행잎이 젖었는데 뭐 하려고 줍니?"
"너무 예뻐서 책 속에 넣으려고요."
"은행잎이 책 속에서 벌레를 못 오게 한대요."
"벌레 못 오게 하는지 어떻게 알아?"
"책에서 봤는데요, 은행에서 구린내가 나잖아요."
"그것은 은행이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서래요."
"그것도 책에서 보았니?"
"또, 가을에 은행잎을 모아서 봉지에 넣어 농에다 넣어 두면 나프탈렌같이 벌레가 못 온대요."
"야, 너 책을 많이 읽는구나?"
"선생님,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요."
"식구들 모두가 다 책을 읽어요."
"내 동생은 다섯 살인데 그림책을 보고요."
"선생님 하나 더 알려 드릴까요?"
"그래, 이번에는 뭔데?"
"선생님, 느티나무에도 노란색 단풍과, 빨간색 단풍 두 종류의 나무가 있답니다."
"저기 보세요. 저 나무는 노랗고 저 나무는 빨갛지요."
"아, 맞구나. 선생님은 늘 보면서도 몰랐는데."
"너는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게 많구나."
"네, 장래 희망은 뭐니?"
"저는 커서 나무박사가 될 거예요."
독서를 하는 어린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가볍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독서를 안 한다고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아침 독서 시간이구나. '아, 빨리 들어가서 책을 읽어야겠다.'
안영선(대구 수성구 황금동)
♥편지-사랑하는 딸 민정에게
"12년 동안 뒷바라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차에서 내리며 엄마를 보며 불쑥 던진 너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더구나. 애써 무심한 척 수능시험장 앞에서 내려주고 돌아오는 내내 눈물 바람이었다.
공부하느라 진짜 고생 많았다. 하루 종일 가슴 졸였던 너의 긴장감과 중압감은 오죽했겠니. 그 모두를 엄마가 대신 해줄 수만 있다면 대신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단다.
시험 끝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수능 가채점을 하며 한 문제 때문에, 등급이 1등급씩이나 내려가게 되어 수시에 지원했던 대학을 포기해야만 하게 되어 속상해하고, 절망하는 널 보면서 엄마 마음은 또 어찌나 아프던지.
수능에 매달렸던 시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 결과라 재수를 결심하는 너의 결단을 응원해본다. 그래, 길고 긴 네 인생에서 1년의 재도전은 아무것도 아니야. 주위의 시선이 뭐 그리 중요하겠니?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라. 분명 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더라도 후회 없도록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애써보자.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언제나 널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본다. 수능 끝나면 제일 먼저 '폭풍 다이어트'를 해서 친척들이 몰라볼 정도로 예뻐지겠다는 너의 결심도 꼭! 성공하길 바란다. 파이팅! 사랑한다 우리 딸 민정아.
수능 다음날에 엄마가.
장분남(경산시 진량읍 부기리)
♥시-귀찮아서
밥하기가 귀찮아서 밥을 시켜 먹었다.
배달된 마른 밥이
맛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청소하기 귀찮아서 로봇 청소기를 샀다
밸 밸 돌아다니니
성가시고 시끄럽다며 발로 밀쳤다
아들은 시켜먹는 밥이 맛있고
로봇청소기가 졸졸 따라다니니
귀엽다며, 동생 같다고 한다.
진작, 귀찮아하지 않아도 될 일을…
손놓고 있으니 몸은 편한데
멍하다.
귀찮았던 일들이 삶의 목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전업주부의 특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귀찮은 일 다 내주고 나니
내 설자리가 없어진 것 같다
요만큼의 노동이 귀찮아서 찌푸린 날들
돌아보니 복에 겨워 기지개 편 날이었음을 안다.
문삼숙(대구 달서구 용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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