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내는 약속대로 새벽 5시 반에 내 아파트에 도착했다. 오자말자 함께 체육관으로 갔다. 평소에 근육깨나 있답시고 아령이나 역기 등의 운동기구들을 함부로 던지며 건방을 떨던 회원들이 조용해졌다. 훨씬 더 우람한 체격의 사나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운동 후 "얘들아, 이제 그만하고 목욕하자"고 일부러 큰소리를 치며 목욕탕으로 옮겼다.
두 녀석의 등엔 큰 용과 호랑이 문신이 그려져 있다. 사우나에 들어가니 평소에 거만하게 모든 사람을 깔보던 고위 공무원과 대기업 사장이 되려 시선을 내리깐다. 두 녀석들이 찬 물탕에 들어가 신나게 헤엄을 친다. "야! 너희들 매너가 그게 뭐야. 수영장과 목욕탕도 구별 못해!"라고 짐짓 크게 꾸중을 하자 두 녀석은 "형님 잘못 했습니다"라고 크게 고개를 조아린다. 하지만 수양이 많이 된 나는 더욱 겸손한 마음 자세로 목욕탕을 나선다. "안녕히 갑쇼"하는 구두 미화원의 인사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앞선 차에서 창 밖으로 담배꽁초가 버려진다. 내가 눈짓을 하자 한 녀석이 내려갔다. 앞차 유리창을 쾅 치며 "야! 너 스케일 하나 크군. 이 길이 전부 네 재떨이냐?"라며 노려보자 그 차 운전자는 "아이고 살려줍쇼"하며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린다. 얼마 전 담배꽁초 버리는 운전자를 꾸짖다 크게 망신당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주정뱅이가 난동을 부리고 있다. 간호사에게 입원시켜 달라고 했다가 병실이 없다니까 욕설을 하며 자신의 가슴을 깨진 술병으로 긋고 대기실의 기물을 두들겨 부수고 있다. 내가 미쳐 말할 틈도 없이 두 녀석 중에 한 녀석이 번개처럼 달려가 주정뱅이를 흠씬 팼다. 주정뱅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대기실을 나갔다. 겁이 난 내가 "이봐, 그래도 뒷탈 없을까?"라고 묻자 두 녀석은 "걱정마십시요. 확실하게 손 봐주면 아무 소리 못합니다"라고 답했다.
퇴근길에 두 녀석과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주차장을 찾을 것도 없다. 두 녀석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 개구리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들어선다. 교통경찰도 못본 척 그냥 지나간다. 소주에 삼겹살에 거나하게 취한 두 녀석이 마지막으로 "큰 형님! 안녕히 계십쇼. 자주 불러 주십시오"하고 크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숙달된 취중 운전으로 퇴근길을 사라져 갔다.
눈을 뜨니 꿈이었다. 꿈치고도 정말 시시한 꿈이다. 치사한 꿈이다. 어쩌다 이런 꿈까지 다 꾸게 되었을까? 내가 점점 하류인간이 돼 가는가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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