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도 하고 그리워도 하고…"사랑한다" 소리도 쳐 봅니다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호스피스 강의를 다니면서 7살 어린이나 100살 어르신이나 죽는 그 순간에는 모두 100%의 꽃을 만개하고 하늘로 떠난다고 이야기합니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보다 서해에서 지는 노을이 훨씬 아름답고, 오래오래 산과 바다를 물들여 놓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도 인간이기에 젊은 친구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아프고 마음 안에서 진실된 기도가 나옵니다. '하느님, 제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제 인생 중에서 1, 2년쯤 떼어서 저 아이에게 주세요.'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셨던 예수님께도 매달려 봅니다. '저 부모들에게 저 꼬맹이를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너무나 예쁜 40대 초반의 아내를 잃은 남자분이 허구한 날 저희 집에 들러서 아내가 있었던 자리를 쓰다듬고 임종을 맞이한 테라스(이 아내는 방에서 죽기 싫다고 하여 산소줄을 몇 미터씩 뽑아서 마당 앞 테라스에서 남편과 딸, 아들의 품 안에서 마지막 시간까지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족들과 대화를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를 거닐고는 갑니다.
술이 살짝 취해서 방문하신 어느 날 환자 명단에서 99세 된 폐암 할머님의 이름을 보고는 "왜 저 나인티나인(99세를 말함)은 살아있는데 그 반도 못 산 내 아내는 죽어야만 했느냐?"고 굵은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쏟고는 가버렸습니다.
얼마 전 사별가족 모임을 하는데 아내를 잃은 어떤 남자 한 분은 아내의 소원인 '남편과 손잡고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고 싶다'는 것도 층층시하의 시집살이 때문에 들어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한스럽다고 하시면서 내내 우셨습니다.
저는 흔히 농담처럼 던지는 말로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남편을 잃은 아내보다 더 세상을 못 견뎌 하며 괴롭게 살아가는 분들이 아내를 잃은 남편들입니다.
자식도 모두 제 갈 길로 가 버리고 아파도 약 한 줌, 따뜻한 물 한 모금 떠주는 이 없고 일터에서 돌아와 너무 온몸이 아파 파스를 붙이려 해도 혼자서는 파스 한 장도 등에 제대로 못 붙여 방바닥에 파스를 깔아 놓고 얼추 눈대중으로 조준해 본다는, 그러나 늘 실패해서 아픈 부위가 아닌 엉덩이에 덜컥 붙어버리거나 구겨져서 붙는다는,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지만 눈에는 왜 그리 눈물이 그렁그렁하시는지.
떠나간 이들이 더욱 많이 생각나는 가을입니다.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슬픔이 떠오를 때 그 슬픔 하나에 추억 하나씩을 꺼내 상쇄시켜 나가면서 세월을 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추억이 많이 남게 되면 슬픔이 어느 정도 묻히겠지요.
그러나 그 슬픔은 내가 죽어야 끝나는 모양입니다. 1년이 지났건, 10년 아니 20년이 지났건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는 장례를 치르지 못한, 봉분을 만들어 주지 못한, 관뚜껑을 제대로 덮어주지 못한, 수세를 거두어 주지 못한 이별들이 우리들에게는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살아있는 한 사별의 슬픔은 예고조차 하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아프게 하고는 사라집니다.
이 가을 그냥 아프고 지나갑시다. 눌러두고, 감춰두고, 잊은 척 외면하면 나중에 더 많이 아프게 되니까요. 우리들 곁에서 먼저 떠나간 사랑했던 이들을 원망도 하며, 그리워하며, 그리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떠나간 그들에게 소리도 쳐 봅니다. 사랑한다고….
글=손영순 까리따스 수녀(경기도 포천 모현호스피스)
정리=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