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족 수기 대상作 '시련 속에서 피워낼 해바라기'

입력 2011-11-16 11:14:12

당티 후엔(Dang Thi Huyen)/베트남

◇대상作 '시련 속에서 피워낼 해바라기'

당티 후엔(Dang Thi Huyen)/베트남

벌써 16년 전이다. 내가 베트남을 떠나온 것이. 가난한 나라, 내가 태어난 베트남에는 한국을 동경하고 경제성장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나는 가족들과 친척들의 엄청난 반대를 뒤로하고 대구의 한 섬유회사에 산업연수생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한국생활과는 너무도 달랐다.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낯선 땅에서 기댈 곳 없는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에 너무도 쓸쓸했다. 마음을 다잡고 지독하게 이겨내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외로움 속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현실을 피해 도망치듯 시작한 결혼생활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말도 안 통하고 문화, 풍습도 달라 한 걸음 한 걸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이런 두려움을 함께해 줄 부모, 형제, 친구는 너무도 멀리 있었다. 남편만 바라보며 살 수밖에 없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남편은 나한테 무관심했다. 그래도 나는 옆집이나 TV에서 열심히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외국인인 내가 할 수 있는 남편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은 밥상을 차려내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밥상을 엎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생활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남편은 자신이 꾸린 가정에 점점 무관심해졌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돈도 벌어다 주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까지 피웠다. 그것 때문에 우리 부부는 자주 싸웠다. 나는 잦은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남편의 실직으로 우리는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를 했다. 시댁과 가까워지는 것은 나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최고인 사람이었다. 시누이들도 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안 좋은 일들은 모두 내 책임으로 돌려졌다. 나한테 전화해서 베트남으로 돌아가라며 폭언을 쏟아댔다. 내가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가정 속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혼자였고 외로운 외국인일 뿐이었다. 문화 차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려 해도 정말 억울하고 이해가 안 됐다.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에 둘째를 낳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은 둘째를 낳으면 남편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고생하는 내가 안쓰럽다며 위로도 해주었다. 모두 돈을 모아 육아를 돕겠다며 둘째를 원했다. 나는 그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 말과 같지 않았다. 남편이 다른 여자 때문에 어린 두 아이를 남겨두고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한국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잘못은 남편이 했는데 모두들 나만 잘못했다고 몰아세웠다. 그렇게 단단히 약속하던 시댁 식구들도 모두 등을 돌리고 말았다. 나와 나의 자식들은 그렇게 버려졌다. 너무 외롭고 고향 생각만 나서 매일매일 눈물로 지냈다.

내 처지가 비참해질수록 부모님께 미안해서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고향을 가슴에 묻으며 하루하루를 너무 힘들게 살았다. 살아간다는 것보다 버텨간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 내 삶은 산꼭대기 벼랑 끝에 아슬아슬 달려 있었다. 마치 큰 파도 위에 위태롭게 서 있어 언제 부서질지, 또 그것들이 언제 나를 덮쳐 버릴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모든 게 절망적인 무덤 속 삶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병들어 버렸다.

삶에 지쳐 우울증에 시달리던 때였다. 어느 날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마시고 아파트 9층에서 뛰어내리려고 베란다 난간에 올라섰다.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상태였다. 그 무엇도 나에게 의미가 없었고 감당할 힘도 없었다. 몹쓸 마음으로 세상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정말 작은 손 하나가 내 손을 잡았다. 큰아들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어미의 아픔을 알았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던 내 아들.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아이는 죄가 없는데…. 아빠에게 버림받은 이 불쌍한 자식을 엄마까지 버리려 했구나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끝없이 밀려왔다. "그래! 자식만 바라보고 열심히 살자."

삶의 용기는 생겼으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가 커 갈수록 걱정도 함께 컸다.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아이들의 공부도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도 교육방송과 책을 통해서 공부했다. 이웃 엄마들에게 육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학교 문제는 직접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하고 교육 방법도 알아보았다.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찾아들었다. 그런 이웃과 선생님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나에게는 그동안 위축되었던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나의 숨은 재능을 찾아주고 기회와 용기를 준 이웃들 덕에 영어과외를 시작했다. 교사는 내가 어릴 적부터 키워오던 꿈이었는데 낯선 땅에서 나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고민도 해결해주어 나와 아이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런 소중한 인연들에 너무도 감사했다.

올해 우리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부족한 엄마를 원망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선생님께 사랑도 많이 받는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학교 성적도 잘 나온다. 그래서 아이들은 든든하게도 나의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 주기도 한다. 선생님들과 이웃들은 아이들 교육을 참 잘 시킨다고 나를 칭찬한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이웃들의 관심과 도움이 아이를 함께 키우고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료해준 덕이다.

세월은 참 빨리 흘러갔다. 16년 동안이나 그리운 나의 부모님을 한 번밖에 못 보고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후회와 원망으로 자꾸 눈물이 난다. 그러나 한쪽에 한국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정말 행복하다. 그 긴 세월 동안 남편과의 관계에서 미움과 갈등으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젠 그 사람도 내가 고생한 만큼 다 이해해주고 자신의 잘못이라며 가족에게 전보다 많이 관심을 갖고 사랑해준다. 나도 베트남 음식보다 한국 음식을 더 좋아하고, 베트남 말, 베트남 글씨보다 한국 말, 한국 글씨가 더 편하고 친숙할 정도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우리 가족 얼굴에도 웃음이 해바라기처럼 피어나고 있다.

나는 시련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처럼…. 한국살이에서 여러 번 밑바닥에 떨어지고 그때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고 좌절했지만 눈물을 삼키는 노력과 인내로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이제는 큰 폭풍과 시련이 오더라도 꿋꿋하게 이겨낼 힘이 생겼다. 그리고 나에게 결코 찾아올 수 없다고 여겼던 행복이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이주여성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나 또한 한국 식구들과 베트남 이주여성들이 겪는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통역으로 나서는 일이 늘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내가 그랬듯이 결코 삶이 녹록지는 못하다. 생활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쉽게 이혼하고 현실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고국을 떠나 이 나라에 오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 뒤엔 책임도 따른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고향의 부모님께 몇 푼의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보다 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사랑으로 가정을 일구어 내는 것이 진정한 효도임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이주여성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그들만이 가진 장점으로 글로벌 여성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의 모든 어머니처럼 희생도 필요하다. 물론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시련 속에서 피워낸 해바라기 같은 나의 경험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늘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서 믿기 때문이다. 내 삶 속 해바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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