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과 상관없는 분야에 무심하다가, 눈여겨보는 순간 그것은 의미를 가지면서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발생했던가를 깨닫고 놀라워한다.
산에 대해서도 그렇다. 최근 수년 이래로 뉴스에 오르내리는 산악인들의 사망 사고를 접하면서, 산은 원래 사람의 목숨을 자주 앗는 곳이지, 하거나 히말라야 산맥의 눈 덮인 거봉들은 참 장쾌하고 또 거기에 오르는 사람들은 대단하지, 하는 정도로 감탄해왔다. 최근 값비싼 등산용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 업체들의 상술도 한몫을 거든 거겠지, 하는 비웃음도 섞여 들고. 내가 산에 대해 그토록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왜 사람들이 그렇게 멀리까지 날아가 아까운 목숨을 버릴까? 하는 해묵은 의아심이 별안간 내 무심함을 뚫고 솟구친다.
돌이켜보면 약간 색다른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도 이와 유사할 것 같다. 기이한 물건을 챙기는 수집가나 비인기 종목의 운동선수들, 장사 안 되는 예술가들도 그렇다. 뭐가 나온다고 이렇게 몰두하지? 이게 나 자신이나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그들도 가끔씩 자책할 테다.
이와 더불어서, 그동안 인간이 행한 무익한 노동의 사례가 밀물처럼 몰려온다. 인류의 한쪽은 정말 의미가 전혀 없어 보이는 곳에다 모든 정열을 쏟으며 지금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뚫으려는 모험심과 미지의 곳을 탐구하고자 하는 발견자적인 욕망이 어떤 이들에겐 들끓었던 것이다.
근세 이후로 미지 탐험 중에 가장 큰 규모는 신대륙의 발견이다.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코웃음 거리밖에 되지 않겠으나 탐험가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목숨을 걸고 먼 항해에 나섰다. 흥미로운 것은 미지의 땅은 점점 좁아질 듯하지만 정반대였다. 미지(未地)는 오히려 섬세해지고 더 확장된다. 그것은 온갖 다양한 형태로, 전에는 생각조자 못한 영역으로, 바다에서 어부의 목숨을 빼앗는 세이렌의 감미로운 노래처럼 탐험자를 유혹했다.
그렇다. 대륙 발견 후, 탐험가들은 땅이 아니라 물질의 입자 속으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 속으로, 현재가 아니라 오랜 과거로 미지를 찾아 떠났다. 이를테면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로제타돌을 아무도 완독하지 못했지만, 당시 샹폴롱이라는 16세 소년이 이 석판(石版)의 해독에 매달려 장대한 고대 이집트사(史)를 열어젖혔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옛 성찬에 떠밀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아시아의 은닉된 비밀은, 롤린슨이라는 영국의 한 군사고문이 목숨을 걸고 높이 120m의 벼랑 끝에 매달려서 거기에 부조된 '베히스툰 단애의 비문'을 연구, 해독함으로써 열리게 된 것도 한 예다. 19세기 중엽의 이야기다.
이 모든 사설은 다름 아니라, 얼마 전에 히말라야에 몸을 묻은 박영석 대장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그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예로부터 이어져 오는 미지 탐험가의 고통스러운 핏줄을 물려받은 자로 보인다. 이미 많은 산악인들에 의해 등정이 허락되었던 히말라야의 고봉들이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어쩌면 오히려 등정이 허용되지 않은 처녀지로 보인 것이다. 비난이 많았던 상업적 '등정주의'에 대해서도 산악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했을 테다.
알려진 바처럼, 박영석 대장은 등로주의(登路主義)를 표방하면서 그것도 '히말라야 3대 남벽'이라고 칭하는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로체에 새 길을 내겠다고 도전을 계속했다. 이윽고 2009년 5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새긴 후 이번에 안나푸르나 남벽(8,091m)을 등정하다 끝내 귀환하지 못했다.
'코리안 루트'는 어찌 보면 히말라야산맥에 선 하나 긋는 일이다. 그 선은 그어도 그만, 안 그어도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서 선을 그을 수 없었기에 그는 위대한 모험가다. 한때는 무익해 보였으나 위대한 모험가들이 그어놓은 갖가지 '선'들은, 오늘날 우리가 물질의 오묘한 속성을 알게 되고, 깜깜했던 역사의 저편과 인간의 내면까지 주시할 수 있게 된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박영석 대장이 그어놓은 '선'도 히말라야의 만년설 위에서 변하지 않는 광채를 발하고 있을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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