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삭스핀

입력 2011-11-10 14:21:53

세계의 진미도 세월 따라 기억하고 있는 맛과는 거리 멀어

세계 3대 진미 음식은 통상 송로버섯(truffles) 거위 간(foie gras) 철갑상어 알(caviar)을 꼽는다. 캐비어는 뷔페식당에서 맛본 적이 있지만 그것이 진짜 철갑상어 알은 아닌 것 같다. 트뤼플과 푸아그라는 아직 보지도 못했으니 진미 음식을 맛본 게 하나도 없다.

송로버섯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미식가들이 최고로 치는 귀한 음식이었다. 향과 맛이 독특할 뿐 아니라 그게 최음제 효과까지 뛰어났다니까 왕실과 고관대작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 품목이었다. 중세 유럽에선 전장에 나서는 군인들이 아내의 아랫도리에 정조대를 채워두고 떠나야 할 정도로 성문화가 문란했다니 그 틈을 비집고 최음제의 은밀 거래는 크게 성행했으리라. 워낙 채취량이 적어 '땅 속의 다이아몬드'로 불렸으며 값 또한 엄청났다. 1, 2㎏짜리 명품이 경매에서 1억5천만원에 팔리기도 했으며 보통 것도 2천500유로(한화 약 300만원)를 호가하고 있다.

푸아그라는 살찐 간(fat liver)이란 프랑스 말이다. 거위에게 간만 키우는 작업은 눈물겨운 고통이 아닐 수 없다. 300g의 옥수수 등 사료를 거위의 입 속에 강제로 털어 넣고 삼키게 한다. 하루에 3번씩 한 달을 계속하면 거위 간은 보통 것보다 1.35㎏ 정도 불어나 '간 큰 거위'가 된다고 한다. 이 과정을 가바주(gavage)라 부르는데 당하는 거위에겐 식사가 아니라 고문이자 형벌인 셈이다. 거위 간 굽는 방법은 프라이팬을 달궈 간의 앞뒤를 지진 후 약하게 소금을 치고 브랜디나 코냑을 흩뿌려주면 멋진 요리가 된다. 이 방법 외에 간을 짓이겨 토스트에 발라 먹기도 하고 수프에 넣어 먹기도 한다.

캐비어는 상어 알에 소금을 쳐 저온으로 숙성시킨 것이다. 흔히 캐비어라고 하면 철갑상어(sturgeon)의 알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캐비어가 철갑상어 알은 아니다. 그래서 어종의 이름을 캐비어 앞에 붙여 연어 캐비어, 럼피시 캐비어 등으로 부르고 있다. 철갑상어 알인 오세트라 캐비어(osetra caviar) 한 통이 80~90달러인 데 비해 비슷한 양의 참치와 청어 캔은 불과 3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캐비어의 위력이랄까 카리스마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세계의 진미를 이야기하면서 중국요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중국에는 수많은 기이한 요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원숭이 골과 제비집 그리고 상어지느러미(삭스핀) 요리를 진미음식으로 꼽을 수 있다.

잠시 삭스핀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어릴 적 보리밥과 개떡조차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한 아픈 가난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신참 기자 시절 근사한 중국요리점에서 처음으로 맛본 삭스핀 요리는 '감동'이 아니라 '환장'할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짜장면 맛이 음식에 관한 첫 번째 감격이었다면 삭스핀은 두 번째 감격의 단계를 넘어선 그런 것이었다.

지금도 어쩌다 삭스핀 요리를 먹어보지만 그때 그 맛은 분명 아니었다. 세월이 변하면서 지느러미의 질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주방장의 솜씨가 옛날 요리의 원형을 찾아내지 못해 그런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혀가 기억하고 있는 그 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젊은 한때 꿩 사냥에 미쳐 제주도를 자주 들락거릴 때다. 어느 농장의 농막을 빌려 우리 팀이 공동 숙식을 하고 있었다. 사냥개의 먹이와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한림읍내 전통시장에서의 장보기가 일과 중의 하나였다. 이른 아침 시장에 나갔더니 상어의 몸통만 잘라가고 대가리와 꼬리 그리고 지느러미 부분만 어판 위에 누워 있었다. 얼른 봐도 황금이나 다름없는 삭스핀 덩어리였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개 삶아주게 가져가도 됩니까?" "사냥 오셨소, 2천원만 주고 가요."

나는 빈 포대에 담아 도망치듯 그 가게를 나왔다. 그날 아침부터 우리 팀은 삭스핀 찌개를 물리도록 먹었다. 사냥개들도 주인이 먹다 남은 것들을 잘도 먹어치웠다. 이실직고하지만 소금과 고춧가루만 넣고 끓인 삭스핀은 별 맛이 없었다.

삭스핀과 같은 진미요리는 피아노 음악이 낮게 연주되는 레스토랑에서 화이트 와인을 앞에 두고 그렇게 먹어야 될 음식이 아닐는지.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을 가진 여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고말고. 2천원짜리 삭스핀 주제에 내가 좀 과했나.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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