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교육청 '청렴도 의지 평가' 학교에는 '평점따기 역풍'

입력 2011-11-10 10:24:30

수학여행 사전답사 못해 응급환자 곤욕 공개입찰 교재, 제때 준비 어려워

#심한 복통을 호소했지만 숙박지와 가까운 병원을 찾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교사들이 사전답사를 하지 않아 병원 위치를 미리 파악해두지 못했기 때문. 학교 측은 "시교육청이 시행 중인 '청렴도 향상 의지 평가제'에 따르면 교사들이 여행지 현지 업체로부터 리베이트 수수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답사를 가지 않아야 학교에 평점을 준다고 해 인터넷 검색으로만 정보를 얻은 때문"이라고 했다.

#2.대구 B중학교 교사 이모(33'여) 씨는 요즘 수업에 애로사항이 많다. 수업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를 구입하려면 '청렴도 향상 의지 평가제'에 따라 공개입찰을 거쳐야 해 제때 준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이 씨는 "A4용지 같은 소모성 물품부터 수업에 필요한 거의 모든 교과재를 공개입찰하게 돼 있다"며 "당장 내일 수업에 필요한 책도 입찰 절차를 거쳐 1, 2주가량 기다려야 하는 등 수업 진도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대구시교육청이 지난해 3월 전국 최초로 시작한 '청렴도 향상 의지 평가제'에 대한 학교 현장의 불만이 많다.

자발적으로 청렴도를 높이자는 제도 본래 취지와 달리 학교 간 평점 경쟁을 부추기고, 교사들에게 번거로움만 주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이 제도를 통해 수학여행과 급식재료, 졸업앨범 등과 관련한 업체 선정에 공개입찰제를 도입하고 교직원 청렴교육을 실시하는 등 본청과 직속기관, 초'중'고교 등 모든 교육기관의 청렴도를 평가하고 있다. 평가대상의 상위 25% 학교에는 종합감사 면제를 비롯한 23가지 인센티브를 주고, 하위 30% 학교에는 감찰과 감사를 집중하는 등 18가지 벌칙을 준다.

이 때문에 학교 현장은 '평점 따기'에 골몰하는 상황이다. 대구의 한 고교 교사는 "교장, 교감 등이 '다른 학교가 평가제를 지켜 점수를 따는데 가만히 있으면 불이익'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며 "평가제 준수 여부는 동료 교사 모두의 인사평점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평가제를 거스르는 의견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또 세세한 입찰 항목 때문에 교사들의 업무 부담도 크다. '급식 식재료 공개입찰' 경우 김치, 고기, 기타 식재료 등 모든 품목별로 입찰을 해야 한다. 한 중학교 행정실장은 "청렴도 향상 의지 평가제 실시 이후 서류 업무가 몇 배로 늘어났다"며 "혹시라도 뒷말이 나올까봐 웬만한 액수의 물품 구매는 모두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또 다른 항목인 '교직원의 자발적 청렴교육'은 '자발적'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교사들이 등 떠밀려 교육을 받는 분위기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상투적인 교육이 과연 청렴도를 높여주는지 의문이다. 수업과 교과연구 외에 감당할 업무만 늘어났다"고 불평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제도시행 초기다 보니 일부에선 제도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제도를 통해 청렴도 개선과 공개입찰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불만 사항 등에 대해서는 학교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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