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더 행복하단 보장은 없다 매 순간 감사하며 오늘을 즐기자
누구나 내일을 향한 부푼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지겠지'라며 기대한다. 비록 더 나아질 보장이 없는 내일일지라도. 하지만 호스피스병동 환자에게 내일은 정말 없어 보인다. "그럼, 내일 뵐게요." 기분 좋게 인사하고 퇴근했는데, 이튿날 임종실에서 만나게 된다. 마지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실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비행기 조종사였던 김선우(가명) 씨. 오로지 보다 나은 내일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180㎝가 훌쩍 넘는 키에 호남형인 그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앞과 위만 보며 살아왔다. 가장 높은 직급에 오른 뒤 정년퇴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삶의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일 년 만에 폐암이 찾아왔다. 대학병원에서 몇 차례 항암치료를 받다가 극도로 쇠약해졌다. 아내와 함께 강원도로 들어갔다. 유기농 음식을 먹고, 좋은 공기를 마셨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응급차를 타고 일가친척이 있는 대구로 왔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처음 만난 그는 극심한 통증과 호흡곤란에 시달리며 이렇게 첫 마디를 뗐다. "언제 내리나요?" 평생 조종사로 살아온 사람다운 말이다. 그리고 "지겹네요"라고 했다.
삶을 즐기는 습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남은 삶'이 오면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고 보낸다. 인생이라는 여행의 '마지막'을 즐기지 못하고 떠난다. 선우 씨는 그저 멍하니 지냈다. 깊이 자면 죽음에 이를까봐, 잠도 앉은 채로 잤다.
그가 안쓰러웠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에게는 정상적인 폐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암이 허리뼈로 전이됐다. 산소 호흡기를 단 채로 앉아서 고개를 숙여 땅을 쳐다보는 자세가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몸 상태를 묻고 "무섭지는 않으냐?"고 말을 건넸다.
"그저 빨리 갔으면 좋겠소." 나지막하게 절망스러운 말을 했다. 무슨 말을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어떤 등산가가 말했대요.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는 아래를 보지 말래요. 아래를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렵고 무섭대요. 위를 보아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냥 지금 머물러 있는 그 자리만 보래요. 죽음이라는 끝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시고, 지나온 세월도 많이는 돌아보지 마세요. 그저 오늘 가족과 그리고 저희들과 편하게 지내시면 어떨까 싶네요." 그는 말이 없었다.
내일을 포기하면, 뜨거운 오늘이 있다. 나중을 위해 오늘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스피스병동에서 근무하기 전만 해도 극성스런 삶이었다. 보다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며 아이들이 공부 안 한다고 심하게 다그쳤고, 나중에 살면서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이들이 싫어하는 여러 가지를 억지로 배우도록 강요했다.
전업 주부로 살 때는 도시락을 싸서 차안에서 먹여가면서, 이 학원 저 학원 끌고 다니던 철없던 엄마였다. 내일의 건강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도 포기했다. 현미와 채식을 꼭 먹어야 했고, 아이들이 피자나 햄버거를 먹으면 당장 건강이 나빠져 큰 병에라도 걸릴 것처럼 야단도 쳤다. 집안일도 마찬가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를 내일을 위해 오늘은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이제는 쓸고 닦는 일을 전보다 덜 한다. 대신 책을 읽는다. 설거지가 널브러져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그것을 즐긴다. 지금 나오는 성적보다는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동기에 초점을 맞춰 아이들과 대화를 했다. 가족과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일에 쓰는 시간은 줄었다. 그러면서 점점 내일이 없는 여자로 변해갔다. 우리는 존엄성을 가지고 품위 있게 오늘을, 그리고 마지막을 즐길 자신이 있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에 감사하고, 지금 행복해지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글=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정리=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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