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구조적 문제 양극화, 주민 변혁 운동으로 푼다
대구의 백미혜 시인(대구가톨릭대 교수)은 아파트의 닫힌 구조가 꿈을 지켜낼 수 있는 '완전한 공간'이라고 노래했지만, 광범위하게 확산된 아파트문화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진다. 한국이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압축성장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화하지 않은 것도 아파트와 함께 성장하고 꿈꿔온 우리나라만의 특수성 덕분이었다. 노동자와 서민층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대량 공급되는 아파트를 장만하는 꿈을 현실화시키면서 행복을 느꼈고, 중산층은 고급 아파트를 일종의 스펙처럼 여기며 더 넓은 평수로 갈아타며 성취감을 느꼈다. 하지만 향도이촌과 도시화의 상징인 아파트 문화는 다시 한 번 양날의 칼로 우리 사회를 겨냥하고 있다. 초고가 아파트가 상징하는 여유와 풍요는 20, 30대 청년층이나 서민들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절망감으로 다가온다. 청년 80%가 선택하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은 보장되지 않고, 취직을 해도 월급으로 집 장만은 대략 난감이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고용기간은 되레 짧아지는 불안감은 정치 지형에 대한 변화 요구를 넘어서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를 사람 사는 마을로 만들어가려면 평생학습이 필수적이다. 평생학습을 통한 마을 만들기에는 한중일 3국이 다 열성적이다.
◇중국, 집에서 10분 이내 평생학습 지원
중국은 사구(社區) 교육, 일본은 마을단위 평생교육, 한국은 평생학습마을 만들기를 통해서 밑으로부터의 사회변혁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의 사구교육은 내가 살고 있는 10분 거리 내에서 원하는 평생교육을 들을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일본은 공민관과 산하 분원에서 평생학습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다. 공민관이 읍면 단위 평생학습을 담당한다면, 공민관 산하의 분원은 마을단위 평생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시흥시, 충남 아산시, 충북 청주시, 경기도 안산시, 서울 마포'서초구, 대구 달서구 등에서 자율적으로 평생학습마을 만들기를 왕성하게 실천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는 서울시 마을 만들기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순전히 공무원 한 사람의 주민자치와 마을 만들기에 대한 안목 덕이다. 서울 마포구 장종환 서교동장은 지난 2004년 이후 마포구 내 염리'도화'서교동 등지로 발령이 날 때마다 마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옛날 마포나루의 소금배가 들어오던 염리동에서는 마을의 역사를 담은 소금카페를 열고 농어촌공사와 연계해 전남 영광'무안군, 전북 고창군 등 천일염 생산지와 소비자 간 직거래체계를 만들고 천일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체험관광 마케팅을 하고 있다.
◇마포 사는 황부자 이야기 공연
염리 마을 이야기를 담은 '마포 사는 황부자 이야기'는 이달 13일 두 번째 공연을 갖는다. 주민들이 배우이다. 염리동에서 도화동, 또 도화동에서 서교동으로 이동된 장종환 동장은 마을에 대한 무관심과 이웃 간 불통을 해소하기 위해 '마을'이란 주제로 가는 곳마다 주민들을 학습시킨다. 정기적인 교육과 정치색 배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자긍심 고취가 마을 만들기의 성패를 가늠한다. 대구에서는 달서구 월성동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평생학습마을 만들기를 첫 도입했고, 성당동 코오롱하늘채에서 두 번째 평생학습마을 만들기를 도입했다. 대구 수성구와 동구는 평생학습도시이기는 하지만 아직 마을 만들기에 돌입하지 않았다. 동구청은 평생학습중심대학으로 선정된 대구대와 손잡고 마을 평생학습지도자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양성된 평생학습지도자들이 각 마을로 돌아가서 주민들을 일깨우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경북에서는 평생학습특별시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경북 칠곡군 금남리가 유명하다. '당신이 꿈꾸는 지역사회를 디자인하라'고 말하는 금남리 300여 주민들은 파워빌리지로 손꼽히는 충북 단양 한드미 마을과도 교류한다. 칠곡 금남리 주민들은 평생학습을 통해서 마을기업을 운영하여 수입을 올리고, 또 평생학습으로 또 다른 세상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이뤄가고 있다.
◇월성 푸르지오 '너나들이 배움터'
대구의 첫 평생학습마을 만들기를 시작한 달서구는 주민 주도로 평생학습마을을 만들어 소통과 연대를 강화하고, 주민의 요구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2010년 월성 푸르지오 아파트가, 2011년 성당동 코오롱하늘채 아파트가 각각 평생학습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지금까지 3천500만원을 지원받았다. 월성 푸르지오 아파트는 책마루도서관, 청소년수련원과 연계하고 성당 코오롱하늘채는 건강가정지원센터와 연계해서 마을축제를 벌이고 가족품앗이로 동아리를 운영한다. 이미 평생학습을 통해서 마을 만들기의 감동을 경험한 월성 푸르지오 주민들은 내 아파트 울타리를 넘어서서 월배 전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북페스티벌 및 벼룩시장을 열었다. 월성 푸르지오 너나들이 배움터에서 공부한 주민들은 지역사회와 사람 사는 모습에 대한 '위 필링'(we feeling, 우리 의식)을 공유한다. 갇힌 아파트에서 파묻혀 사는 주민들을 지역사회로 끌어내어 마을 사람으로 변모시키는 묘약이 바로 평생학습이다.
◇가진 자'시설 중심 평생학습 반성해야
"도시 아파트 주민들의 연대감은 그냥 형성되지 않는다.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류하고, 공동체의식을 배우고 마을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삭막한 시멘트의 아파트 공간은 인간미 넘치는 마을공동체로 바뀐다"는 김남선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장(대구대교수)은 평생학습마을 만들기를 통해서 기존에 행해지던 평생교육의 한계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하드웨어가 갖춰진 시설 중심으로 낮에 이뤄지는 평생교육은 고소득층에 맞벌이를 안 해도 되는 여유 있는 계층에 집중되어 왔다. 평생학습이 학력격차나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켜 주지 못하고 가진 자, 배운 자, 있는 자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격차를 더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가진 자의 평생학습, 있는 사람의 여유생활'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제 중앙단위 시설중심에서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평생학습을 할 수 있는 거주지 중심, 지역주민 중심으로 평생학습의 패턴이 바뀌어야 한다"는 김 교수는 "평생학습을 통한 마을 만들기가 진행되면 노인문제, 청소년문제를 예방하고, 여성들의 여가선용은 물론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평생학습 교'강사 활용을 통한 고용창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평생학습을 통한 마을 만들기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밑으로부터의 사회변혁'의 원동력임을 인지한다면 대구광역시는 물론이고, 아직 평생학습개념을 도입하지 않은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시스템 구축과 예산 인력 배분에 나서야 한다.
최미화 뉴미디어국장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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