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개념 기업'…그런데 어떡해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거지?

입력 2011-11-05 08:00:00

대구은행 신입행원 무료급식 봉사활동.
대구은행 신입행원 무료급식 봉사활동.
매년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구백화점 한마음봉사단.
매년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구백화점 한마음봉사단.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금복주 참사랑봉사단.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금복주 참사랑봉사단.

요즘 기업들의 화두는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이다. 소비자들의 요구이기도 하거니와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업의 책임과 상생경영을 외칠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너도나도 나서서 재단을 만들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추세다. 중소기업과 상생하겠다면서 기금도 조성한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이 그리 편안한 눈길로만 보여지지는 않는다. 본질은 사라지고 겉치장만 화려하게 눈길을 유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나눔의 실천'에만 있는 것일까?

◆기업은 악마일 뿐인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과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기업은 근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이기적 집단이 아니냐, 그들에게 왜 '윤리성' 같은 것을 기대하느냐"라는 시큰둥한 답변을 내뱉었다. 심지어는 "나와 내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월급을 지불해주는 장사꾼일 뿐"이라는 대답도 있었다.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을 대변한다. 정경유착을 통해 기업의 덩치를 불렸고, 돈이 된다면 서민들의 밥그릇마저 빼앗는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인식될 뿐인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우리와 분위가 사뭇 다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해 온 서양에서는 소비자들이 상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기업의 윤리성'을 따지고 있으며,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사회책임경영 표준(ISO 26000)까지 채택했을 정도다. 여기에다 파이낸셜타임스 지속가능경영지수(FTSE4GOOD),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도미니사회지수400(Domini Social 400),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 SRI지수(JSE SRI Index)와 같은 유수한 사회책임투자지수가 마련돼 있다.

미국에는 '굿가이드'(goodguide.com)라는 사이트가 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환경정책학 다라 오루크 교수가 만든 것으로 7만5천여 개 제품에 대해 각 업체의 노동정책, 기업정책, 에너지 사용, 환경영향, 오염기록, 그리고 공급망 정책을 아우르는 정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있다. 또 제품에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알려주고 덜 유독하거나 점수가 높은 다른 제품을 제안한다. 2009년 말에는 아이폰 앱도 선보였다. 소비자들이 폰카메라를 제품 바코드에 갖다대기만 하면 즉시 그 제품에 대해 환경과 건강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간편화해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나아가 기업들에게 보다 '법적'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생산을 하도록 강제하는 장치가 된 것이다.

◆사회공헌 높은 기업이 실적도 좋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사회공원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말 펴낸 '기업'기업재단의 사회공헌 백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국내 주요 기업의 사회공헌 비용 지출은 전년보다 22.8% 늘어난 2조6천517억원으로 집계됐다. 2004년 1조2천284억원이었던 것이 2005년에는 1조4천25억원, 2006년에는 1조8천48억원, 2007년에는 1조9천556억원, 2008년에는 2조1천604억원 등 경제 위기 상황에도 비롯하고 매년 8~23% 증가해온 것.

전경련에서 발간한 2009년 사회공헌 백서를 보면 맨 처음 등장하는 사진이 바로 베트남에 롯데스쿨을 운영하는 롯데백화점, 금호석유화학의 습지가꾸기,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지역의 LG Hope School을 운영 중인 LG전자, 중계동 연탄나르기 봉사활동을 벌이는 농심 사랑나눔봉사단, 맑음나눔의 일환으로 남산 정화활동 중인 대림산업, 사랑의 김장김치나눔 봉사활동을 벌이는 대한통운 등의 사례가 제시되고 있다. 지역에서도 대구백화점의 한마음봉사단, 동아백화점 봉사단, 지난 9월 창립된 DGB사회공헌재단, 금복주의 금복문화'장학'복지재단 등 수많은 봉사단과 복지재단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회공헌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 이유는 바로 사회공헌이 기업 성과에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책임투자 전문 리서치회사 서스틴베스트가 국내 상장기업 400곳의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이하 ESG) 성과를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수한 성과를 낸 AA등급 기업의 주가수익률은 최근 3년 반(2008년 1월∼올해 6월) 동안 코스피(KOSPI) 200보다 31.2% 높았다. 반면 ESG 평가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주가수익률은 코스피 200 수익률보다 28.2% 낮게 나타났다.

즉 친환경적 기술'제품 개발에 앞장서고, 사회공헌에 힘쓰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든 기업일수록 우수한 성과를 내고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이제 사회적 가치에 투자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필수 투자항목이 됐다.

◆더욱 강조돼야할 법적'윤리적 책임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할 때 복지에 대한 기여만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기업들의 '나눔의 실천' 이면에는 여전히 '사람'보다는 '돈'을 추구하는 기업의 비윤리적인 모습이 감춰져 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기 보다는 '파견근무'라는 교묘한 형태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몇 배 차이가 나는 임금을 주는가 하면, 입점 업체들에게 각종 판촉비용까지 부담을 강요하는 유통업체들의 뿌리 깊은 관행, 비자금 조성과 편법 재산상속 등 갖가지 사회 문제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민(28) 씨는 "차라리 기부 같은거 하지 않아도 좋으니 기업이 순환출자 같은 방식으로 편법상속을 하지 않고, 노조를 탄압하지 않으며,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등의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만 한다면 그 이상의 선행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경영학자 캐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4단계로 정리했다. 기업은 사회의 기본적인 경제단위로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경제적 책임'이 가장 먼저이며, 사회는 기업이 법적 요구사항의 구조 내에서 경제적 임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법적 책임'이 2단계, 법으로 규정화하지는 못하지만 기업에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대하는 행동과 활동들을 의미하는 '윤리적 책임'이 3단계, 기업의 개별적 판단이나 선택에 맡겨져 있는 책임으로서 기부나 나눔 등 자발적 영역에 속하는 '자선적 책임'이 마지막 4단계다.

경북대 경영학과 구동모 교수는 "기업의 근본 가치는 '생산활동을 통한 사회기여'에서 찾아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형적으로 마지막 단계인 4단계 책임만 부각돼 있다"며 "기업이 당연히 가장 중시되야 할 부분은 고용을 창출하고,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등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에 있어 법적'윤리적 기준을 지키고 책임을 준수하는 것 등은 상대적으로 도외시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부나 재단 설립은 사실 기업체로 봐서는 손해볼 것 없는 장사로 세금 혜택부터 기업이미지 제고를 통한 매출 확대 등의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 교수는 이런 4단계 '자선적 책임'에만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에 대해 "자칫 명분만 세워주고 실리는 없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기업이 경제적'법적'윤리적 책임을 다하는가에 대한 시민들의 민감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며 "상식선에 있는 기준을 만들어 시민사회단체의 조직적인 감시를 통해 시민들도 득을 보고 기업의 기업활동에도 침해를 받지 않는 수준의 책임의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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