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밥'을 먹여주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 대한민국 도시들은 앞다퉈 저마다 문화를 포장해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버려진 담배공장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는가 하면, 근대건축물인 옛 서울역사는 복원을 마치고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섬도 문화를 입히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기도 가평 자라섬의 국제재즈페스티벌은 말해주고 있다.
바야흐로 '문화 쟁탈전의 시대'. 저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소재와 환경을 토대로 문화 상품을 만들어 도시 경쟁력 높이기에 나선 전국 각 지역 현장 취재를 통해 문화도시 대구의 나아갈 길을 찾아봤다.
◆'서울역 프로젝트'
기차역으로서 역할을 상실해버린 옛 서울역사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태어났다. 2004년 KTX 개통으로 한동안 비워져 있던 서울역사가 1925년 준공 당시 모습으로 완전 복원된 것이다.
문화재 복원은 각 공간의 중요성과 의미에 따라 '상''중''하'로 나뉘어 까다롭게 복원됐다. 근대건축물 복원의 첫 사례인 만큼 학계와 문화계의 관심이 높았다.
복원된 '문화재, 서울역'은 공모를 통해 '문화역 서울 284'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문화재 사적번호 '284'를 '문화공간'이라는 콘셉트와 접목시킨 서울역은 앞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2012년 3월 '문화역 서울 284'의 공식 출범과 올해 8월 서울역사 원형복원 개관 사이에 '개관프로젝트 카운트다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예술프로젝트는 김성원 국립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이번 전시는 특이하게도 내년 2월이 되어야 완벽하게 완성이 됩니다. 사람들이 한번 왔다가면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일이 벌어져야 하기 때문에 총 35명의 작가들이 점진적으로 참여해 전시를 완성해가는 방식입니다."
중앙홀 입구에는 새로운 변화의 수호신이 될 이불의 설치작품과 진보적 미래를 향해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흰색 물줄기인 김홍석의 '분수'가 설치돼 있다. 부인대합실에는 박찬경의 '만신'이 상영되고 있다. 모든 액운을 물러가게 하고 혼령을 위로하는 일종의 제의식으로 작동한다. 3등 대합실에는 정연두의 '타임 캡슐Ⅱ'이 전시돼 있다. 거대한 타임캡슐 안에 들어가면 작가가 설치해둔 배경에서 직접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2층에는 종이박스를 브론즈로 캐스팅한 김홍석의 '계단 형태-연단1'이 설치돼 있다. 각종 시위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서울역 공간에 대한 해석이다. 서울역 돔 아래 한계륜의 '깃발'작품도 독특하다.
이처럼 1925년 서울역사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 인디밴드 공연,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서울역은 오래된 기억과 더불어 현대적인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섬이 축제의 현장으로
경기도 가평에 있는 자라섬은 2003년까지는 몇몇 낚시꾼들만이 찾는 버려진 땅이었다. 비만 오면 물이 차올라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동안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은 쓸모없는 섬이었다.
하지만 2004년, 국제재즈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 세계캠핑캐라바닝대회 유치, 환경생태공원 조성 등으로 이제는 가평 관광의 전진기지가 됐다.
2004년 축제를 기획하기까지 사연이 재미있다. 지역발전방안의 하나로 축제를 고민하고 있던 가평군 문화관광과 공무원이 우연히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인재진 총감독의 강의를 듣게 됐다. 인 감독의 강의에서 힌트를 얻은 공무원은 인 감독과 함께 지금의 축제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죠. 특히 축제 첫해에는 이틀간 폭우가 쏟아져 어려움을 겪었지만 3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렸어요. 성공을 확신했죠." 인 감독의 말처럼 매년 재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자라섬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2006년, 2007년 10만 명이 찾던 축제에 2009년 15만 명이 찾았으며 올해는 총 18만8천 명의 관객이 자라섬을 찾았다. 버려진 섬이 가을만 되면 전 세계인들이 모여드는 재즈 축제의 장소로 변신하는 것이다.
자라섬은 이를 시작으로 2008년 국내 최대 규모의 캠핑장을 조성하고 세계캠핑캐러바닝대회를 유치했다. 매년 겨울에는 자라섬 씽씽 겨울축제를 여는 등 축제의 섬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에는 국제재즈페스티벌이 대한민국 우수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초제조창→전시 공간
청주는 전국에서 가장 큰 연초제조창을 비엔날레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9월 2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열린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는 40일간 관람객 42만 명이 다녀갔다. '유용지물'을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는 65개국에서 3천200여 명의 작가가 참가해, 세계 최대 규모의 공예축제로 열렸다. 국내 첫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KT&G 청주 연초제조창은 1946년 지어진 2만7천여 평의 규모의 우리나라 최대 담배공장이다. 담배 주산지인 충북의 담배 물량을 모두 소화했기 때문에 3천여 명이 근무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그러다가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1999년 폐쇄결정이 내려졌고, 2004년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황량한 건물로 도심지에 10년 가까이 방치돼, 도심의 슬럼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국내 첫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를 보고 이 담배공장이 세계 최고수준의 문화공간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20여 개국 미술전문가 500명은 담배공장을 비엔날레 행사장으로 활용한 것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유럽의 오르세미술관이나 테이트모던보다 더 좋은 아트팩토리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 핑커피어 미국 퀸즈미술관장은 "높고 넓은 공간과 두터운 바닥, 그리고 잘 보존된 노출콘크리트 등은 미국과 유럽의 어떤 문화공간보다 훌륭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국토해양부는 연초제조창을 2011 최우수 공공건축대상으로 선정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분원 설치도 논의되고 있다.
변광섭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기획홍보부장은 "65년간 연초제조창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삶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아 청주시는 이를 문화적으로 잘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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