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종종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나시는 할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그 광경에 고정 되어버린 눈을 떼어 놓기가 힘이 듭니다. 조심스레 휠체어를 운전하며 장애인복지관으로 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져 눈앞이 뿌옇게 흐려집니다. 아버지는 소원하던 고희연을 마치고 얼마 후에 중풍을 얻어 지금까지 운신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아버지라고 말하겠습니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지만 다른 자녀들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당신이 자녀들에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일러준 기억은 없습니다. 하나 이제껏 부녀지간으로 지내오면서 몸으로 보여준 당신의 삶이 존경의 이유가 됩니다.
젊은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보니 버스가 끊겨서 성주에서 고향집 무태까지 달빛 아래 걷다 뛰다 하며 돌아왔다는 일을 농담처럼 들려주었을 때에는 눈물을 삼키려고 헛기침을 했습니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넘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격동의 시기를 맨손으로 헤쳐 왔습니다. 끼니 걱정이 다반사였던 지난 시절을 겪어온 터라 여전히 두어 가지 반찬에도 감사히 밥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질리도록 먹었던 조밥만은 아직도 넘기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것은 가난을 이기고 여기까지 온 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명력 때문입니다. 처음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에는 우리 곁에 있어주기만을 소원했을 뿐 휠체어에 의지해서라도 다닐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병동에 있던 비슷한 처지의 어른은 삶의 희망을 놓아버려서 결국엔 일어서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오른쪽이 마비 되어 숟가락도 들 수 없었지만 음식이 자꾸 흘러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반의반도 안 될지라도 기어이 떠 넣었습니다. 왼발에 힘을 주고 왼팔로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발을 옮겼습니다. 넘어져도 또 일어서고 지팡이 때문에 손에 못이 박혀 잡지 못할 때까지 걸었습니다. 운동선수가 밥 먹고 운동만 하듯이, 아니 아버지에게는 밥을 뜨는 것도 고된 훈련이었습니다. 하루같이 아침을 먹고 치료용 자전거를 타고 점심 후에는 아파트 정원을 걷습니다. 1시간이라야 마당 한 바퀴가 전부이지만 빼놓은 적은 감기로 누운 날밖에 없을 것입니다. 역경을 이기며 이어온 인생 앞에서 노을 녘에 닥쳐온 육신의 고통 때문에 패배로 마감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았습니다.
당신은 부여받은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분입니다.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생명을 마지막 날까지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저는 좋습니다. 당신은 놓기보다 어려운 삶을 견뎌 가고 있습니다. 친정에 들어서면 하얀 머리를 하고 오른팔이 늘어질까 붙안고 곱게 앉은 당신이 제 이름을 불러 줍니다. 아버지, 오늘도 거기 앉아 계시니 너무 좋습니다.
이 미 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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