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방송 전환, 진행 상황과 문제점
2012년 12월 31일 오전 4시를 기점으로 지상파 TV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이 이뤄진다. 디지털 방송은 기존 아날로그 방송에 비해 5, 6배나 높은 고화질(HD) 영상과 음향 청취가 가능하고 '데이터 방송' 형태로 각종 정보를 서비스하는 쌍방향 방송 환경이 구현된다.
역사적인 디지털 방송시대를 1년여 앞두고 국민 누구나 지상파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보편적 시청권'이 침해되지 않고 순조롭게 디지털 방송으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지 진행 과정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한 문제점을 짚어본다.
"당장 내년부터 아날로그 시청 불편"
당장 내년부터 아날로그 TV 수상기를 통해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는 프로그램 시청에 불편을 겪을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내년 1월부터 아날로그 방송의 종료를 소개하는 고정 자막을 송출하고, 7월부터는 전체 화면의 10~50%가량을 검은색으로 내보내는 '부분 종료'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디지털 방송 수신기 보급률이 98%가 넘어서면 매일 일정시간 아날로그 방송 송출을 중단하는 '가상 종료'가 이뤄진다. 이렇게 될 경우 디지털 TV를 구입하지 않은 시청자들은 디지털 방송 종료 1년 전부터 '불이익'을 겪는 셈이다.
지상파 TV를 직접 수신하는 시청자가 아날로그 수상기로 디지털 방송을 수신하려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컨버터를 사용해야 하며, 가구에 따라서는 디지털 신호를 잡을 수 있는 안테나를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현재 국내 가구의 디지털 TV 보급률은 지난 6월을 기준으로 63%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컨버터를 설치한 가구까지 포함해도 70%에 미치지 못한다. 영국의 경우 디지털 전환 완료 2년 전에 이미 디지털 TV 보급률이 90%에 이르렀다. 또 국민들의 디지털 전환 인지율이 86%를 기록, 완료 2년 전에 각각 98%와 90%를 달성한 일본과 영국보다 낮았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서 45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장모(79) 할아버지는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종일 아날로그 TV를 보면서 지낸다. 구식 텔레비전 수상기로는 앞으로 방송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말하는 장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멀쩡한 텔레비전을 버리고 새로 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소득 하위 50%까지 지원 밝혔지만…"
방통위는 지난 7월부터 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시청각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취약계층 중 아날로그 수상기만 보유하고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에 대해 컨버터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디지털 TV 구매 시 10만원을 지급하는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혜택을 받은 가구는 아직 미미하다.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중순까지 지원대상 디지털 전환 취약계층 168만 가구 중 정부의 지원을 받은 가구는 전체의 0.8%인 1만2천 가구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방통위는 지상파 TV의 디지털 전환과 관련, 소득 하위 50%에 대해 컨버터 대여와 안테나 설치 지원 명목으로 3만~4만5천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11일 방통위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소득수준 하위 50%에 대해 컨버터 대여비 6만원 중 3만원을 지원하고 안테나 설치가 필요할 경우 비용 9만원 중 1만5천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고 아날로그 수상기로 지상파 TV를 직접 수신하는 시청자는 3만원을 들여 컨버터를 빌려야 하며, 가구에 따라서 7만5천원을 추가로 지불하고 안테나도 설치해야 한다.
"국민들 기대 수준에는 아직 못 미쳐"
방통위가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지원 대상 가구의 범위를 넓히고 지원금도 늘리려고 하고 있지만 관련 예산이 부족하고, 국민들의 체감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방통위는 내년 전체 예산 8천308억원 가운데 1천46억원을 디지털 TV 전환 자금으로 책정했다. 이 중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규모는 777억원이며 일반 서민들이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는 고작 261억원이 배정됐다. 지난 7월에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한 일본의 경우 4년간의 준비기간 동안 직간접 지원'국민 홍보 등으로 전체 예산 12조원을 집행했다. 이미 2009년에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한 미국이 쓴 전체 예산은 34억달러(3조7천억원) 규모였다.
참언론시민연대 강길호(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대표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TV는 사회적 여흥과 오락거리를 의미한다. 이들에게 보조금 10만원을 줘도 디지털 TV를 구매할 경제적 여유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따라서 정부가 이들에게 디지털 TV를 완전히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컨버터만 달면 문제없다고?"
아날로그 TV로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컨버터의 가격은 7만~8만원으로 디지털 TV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이다. 방통위도 디지털 컨버터 구입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홍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전의 아날로그 방송과는 달리 왜곡된 화면을 봐야 한다. 아날로그 TV의 화면 비율은 4대 3이지만, 디지털 TV의 화면 비율은 16대 9이기 때문이다. 가로 길이가 기존보다 길어지는 까닭에 화면 양쪽 끝이 잘리거나, 위아래로 길어지는 식으로 화면 일그러짐이 불가피하다. 컨버터를 이용한 시청 방식이 갖는 또 다른 약점은 양방향이라는 디지털 TV의 핵심이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컨버터 이용을 홍보하고 있지만 이처럼 시청자들이 겪을 '불편한 진실'은 감추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 가구의 약 90%가 유료방송 가입 형태로 지상파를 시청하고 있다. 디지털 TV를 보유한 케이블 방송 가입자라도 디지털 상품에 따로 가입하지 않으면 아날로그 방송만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케이블 가입자의 70%가량이 저가형 아날로그 상품(SD)에 가입해 있다는 것. 따라서 국내 전체 시청 가구의 60%가 디지털 방송을 맞이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케이블 가입자들은 디지털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셋톱박스를 달거나 월 1만원 정도 더 비싼 디지털 요금제를 선택해야 한다.
한편 지상파 난시청 지역도 디지털 방송의 사각지대다. 자연 지형적 특성 등으로 공중파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은 디지털 방송의 직접 수신이 어려운 것이다. 대구의 경우 난시청으로 인한 시청료 면제가구는 5만4천여 가구로 전체 가구의 3.9% 수준이다.
KBS 대구방송총국 남인식 시청자서비스 국장은 "KBS는 이미 '디지털 TV 시청 100% 재단'을 만들어 출자액 300억원으로 극소출력 중계기 설치 사업을 해오고 있다"면서 "대구경북에서도 시청에 어려움을 겪는 시청자를 위해 무인중계시설(TBR) 디지털화, 마을 공시청 시설 확대 등 사업을 통해 난시청 해소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석수기자 s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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