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바비'서 냉혈 망나니 삼촌 역 배우 이천희

입력 2011-10-20 14:16:42

그의 이름 앞에 '엉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적이 있다. SBS TV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천희(32)는 배우다. KBS 2TV 사극 '대왕세종'과 드라마스페셜 '미련', MBC TV 드라마 '글로리아' 등을 통해 그는 이내 배우의 매력을 온전히 드러냈다. '엉성'은 이제 오간데 없다. 철저한 연기자 이천희만 있을 뿐.

이번에는 독해졌다. 이상우 감독의 영화 '바비'에서 조카를 입양 보내려는 삼촌을 연기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지적장애를 가진 형의 동의서를 받아내 그의 딸을 미국으로 팔아 버리려하는 '망나니' 삼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입에 욕이 붙어 있는 건 기본, 손찌검도 서슴지 않는다.

이천희는 "시나리오를 읽고 정말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하며 연기를 했다"고 몰입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실제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보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도가니'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실제 사건이니까요. 내용은 다르지만 우리 영화도 비슷하게 생각할 거리를 줬으면 해요."

'바비'는 1990년 한 감독이 다루려 했다가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 간 마찰이 생길 것을 우려한 시선 때문에 접었던 작품을 이 감독이 다시 끄집어낸 영화. 우정과 입양이라는 국제적 제도 뒤에 가려진 가식을 전하기 때문에 무겁다. 순수한 입양이 아닌 다른 목적이기에 더하다.

이 이야기가 더 무겁고 안타깝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 '엄마는 창녀다''아버지는 개다' 등을 연출한 문제적 감독 이상우의 신작이라는 까닭도 있다. 그의 전작들을 본 사람이라면 감독의 메시지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독님의 사상이 궁금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만나기 싫었죠. 왜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는지 물어보려니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만나보니 영화에서 본 느낌과는 다르게 점잖으시더라고요. 물론, 나중에는 다 탄로 났지만요.(웃음) 영화 찍는 것을 보니 생각도 깊게 박혀있는 분 같고,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겁니다'라고 콕 집어서 얘기하시는 모습도 좋았어요."

이천희는 "학생들이 열정을 뭉쳐 작품을 만든 느낌"이라며 "돈을 벌어 수익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순수한 의도로 열심히 해 16일을 버틴 것 같다"고 회상했다.

최근 끝난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바비'가 초청돼 부산을 찾은 그는 상영관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낌도 전했다.

"형이랑 조카들이 안고 춤추는 장면이 생각나요. '장애를 가지고 있고 잘살지도 못하는데 굉장히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하며 봤죠. 제가 찍어 놓고도 다음 장면이 뭔지 잊고 있었어요. 이내 제가 나와 난장판을 만들어버리는데 정말 '나쁜 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포항 구룡포에서 쉼 없이 찍은 16일 동안의 촬영이 힘들었다고 했다. 빨리 구룡포를 떠나고 싶었다. 그래도 현장에 '아저씨'로 유명세를 치른 김새론을 비롯해 아론'예론 남매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세 자매가 오면 현장이 늘 즐거웠어요. 구룡포에서의 촬영은 힘들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줄어든 거죠. 애들도 힘들텐데 너무 재밌게 촬영하니깐 저를 비롯한 스태프가 아이들도 재밌게 촬영하니 우리도 재밌게 하자고 했죠."(웃음)

아이들 생각에 아빠 미소가 절로 나오는 이천희. 아빠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지난 3월 아빠가 된 그에게 소위 말하는 '딸바보'인 거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아직도 아이보다는 신혼 재미에 푹 빠져있다는 설명.

그는 "아직까지는 딸보다 와이프가 예쁜 것 같다"고 좋아했다. "와이프가 집에 있을 때는 딸만 예뻐한다고 그러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와이프가 너무 좋아요."(웃음)

9살 어린 아내 전혜진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자 "대본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이러 이러한 내용의 영화라는 사실을 얘기하니 이해를 해줬다"며 "아내도 연기자라서 그런지 연기니까 더 악독하고 세게 하라고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이천희는 아내의 조언을 받고 제대로 악한을 드러냈다. "드라마에서도 안 좋은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드라마와 영화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드라마는 욕도 잘 못하는데 이번에 영화 하면서 맺혔던 것을 제대로 풀었어요."

물론 극중 아론의 얼굴에 반찬을 던지는 장면을 차마 할 수 없어 조명감독이 대신했다. 이런 설명을 듣지 않고 영화만 본다면 정말 최악의 삼촌 가운데 한 명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마주한 그는 순하고 웃기도 잘하며 말투도 부드럽다. 그런데 '바비' 속 모습을 본다면 조금은 다른 이천희에 놀랄지 모르겠다. 완벽하게 악한을 연기했다는 의미다. '바비'는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 됐고, 아직 개봉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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