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A씨가 B씨에 배 아픈 까닭

입력 2011-10-19 11:10:38

#. 직장 생활 15년차인 직장인 A씨의 월급 통장에 입금되는 돈은 한 달 250만 원이다. 오전 7시면 집을 나서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대구성서산단에 있는 직장에 갔다가 퇴근 후 부리나케 집에 가면 오후 8시쯤이다. 업무를 위한 일에 13시간쯤을 보내는 그는 자기 계발은 꿈도 못 꾼다. 시간도 부족하지만 그보다 돈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중간 간부급인 그가 가장 열받을 때는 금융권이나 대기업이 성과급 등 돈 잔치를 벌일 때. 대졸 초임이 연 4천만 원을 넘는다는 보도를 볼라치면 자괴감을 떠나 솔직히 가족 보기 민망하다. 임원이 될 자신도 없지만 회사 임원 연봉도 현재 A씨가 받는 것과 큰 차이가 없으니 미래마저 암울하다.

#. A씨와 대학 동기로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B씨. 증권사에 다니는 그는 집에서 차로 15분(출퇴근 시간 기준) 거리에 사무실이 있어 아침 운동을 마치고 8시 30분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다. 개점 시간이 9시 30분이었을 때는 9시 이후에 집을 나선 적도 많았다. 퇴근 후에도 시간이 남아돌아 부부가 함께 골프연습장을 다니고 어학 공부를 한다. 퇴직 후 해외여행을 위해서다. 통장에 입금되는 급여는 월 650만 원 선. 연말에 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성과급으로 아내의 자동차를 중형으로 바꿔줄 생각이다.

10년 전만 해도 A, B 두 사람은 동기 모임에서 자주 보곤 했으나 지금은 거의 얼굴 마주칠 일이 없다. 서로 다른 직장을 택한 이들의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 B씨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열심이지만 A씨는 국민연금 외는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다.

486세대의 막둥이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A씨는 B씨가 몸담고 있는 금융계의 고소득에 대해 솔직히 배가 아프다. 은행'증권'카드사 임직원 급여가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 든다. 금융위기 때 약 14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받아 정상화돼 놓고 이제 좀 사정이 나아지니 돈 잔치를 벌이는 게 마뜩잖다. 중소기업은 전 사원들이 뼈 빠지게 일해도 쥐꼬리만 한 월급마저 제대로 받기 어려운데 그들은 너무 쉽게 돈을 번다. 그것도 새로운 상품 개발보다는 예대마진이나 수수료 등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영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겨놓곤 수수료율 인하 등 대국민 서비스 개선은 팽개친 채 배당과 임금 복지에 과실을 쏟아붓는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수수료를 낮춰 달라고 생업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서는데 카드사는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낸다고 자랑이다.

그 결과 금융권 임금은 수직 상승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와 10대 증권사 직원들의 2011 회계연도 평균 월급은 651만 원. 한국투자증권은 매달 876만 원, 신한금융지주는 752만 원을 받았다. 주주 배당도 많다 보니 결산을 하고 나면 금융권에선 쓰레기에도 만 원짜리 지폐가 돌아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더 기가 막힌 건 공기업.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임금은 매년 급증한다. 정부 발표를 보면 지난해 기준 27개 공기업 임직원의 성과급 총액은 1조 3천441억 원으로 전년 대비 42.5% 증가했다. 최근 정전 사태로 국가 기간망을 마비시킨 한전은 지난해 영업적자가 1조 7천875억 원에 달했지만 임금은 10.7%나 올려 1인 평균 급여가 7천152만 원이다. 그러고도 회사가 어렵다고 전기료를 지난 7월 평균 4.9% 올렸다.

부채가 22조 9천억 원인 도로공사는 매년 2.5%꼴로 고속도로 통행료를 올리겠다면서도 임금 깎겠다는 말은 없다. 큰 폭의 관광 적자 상태인 한국관광공사는 직원들이 월급의 3.8배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아갔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정부에 손을 벌리고, 아니면 독점적 지위를 이용, 요금 인상을 통해 호주머니를 채우다 보니 '신의 직장' '신이 숨겨놓은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이란 부러움과 질타가 동시에 쏟아진다.

A씨는 금융권과 공기업의 지나친 고임금 구조에 대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사회 갈등을 유발할 임금 격차 해소를 정부의 중요한 임무로 인식하라는 것이다. 고임금보다는 '임금'복지 나누기'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청년 실업률 해소와 당면한 경제위기를 이겨나가는 길이 되고, 나아가 이것이 금융권과 공기업에도 궁극적인 도움이 되는 길임을 알게 해줘야 한다고 소리 높여 절규하고 싶어한다.

최정암/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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