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약물과 전쟁

입력 2011-10-19 11:11:12

필로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메스암페타민은 1919년 일본의 약학자 오가타 아키라(緖方章)가 합성에 성공한 마약이다. 우울증을 없애고 일할 때 집중도를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던 중 개발됐다. 이 약물의 효능에 주목한 일본 군부는 1931년 만주사변 때부터 병사들의 전투 수행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투여했으며 공포심과 수치심을 없애기 위해 가미카제 특공대나 정신대 여성에게도 사용했다. 전선이 태평양으로 확대된 1940년부터는 군수공장 노동자와 기술자에게도 공급했으며 1941년부터는 일반인에게도 판매했다. 노동력을 최대한 쥐어짜 내기 위해서였다. 필로폰은 이를 대량생산한 대일본제약회사의 상품 이름으로, '일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필로포노스(philoponos)에서 따왔다.

나치 독일도 병사들에게 약물을 상습적으로 복용토록 했다. 나치는 템플러라는 제약회사가 개발한 메스암페타민계 각성제 '페르피틴'을 1938년 폴란드 침공 때 운전병에게 시험 투여한 뒤 패전 때까지 총 2억 정 이상을 생산했다. 이 약물을 복용한 병사 중에는 197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하인리히 뵐도 있었다. 그가 더 많은 페르피틴을 보내달라고 가족에게 편지를 한 것을 보면 이 약물에 대한 독일 병사들의 의존도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회 2알, 하루 2회'라는 복용 지침 이외에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나 경고는 전혀 없었다.

이는 현대의 전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캐나다군을 오폭(誤爆)해 4명의 사망자를 낸 미 공군 F-16 전투기 조종사가 필로폰과 비슷한 효과의 암페타민계 각성제를 정기적으로 복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군 내에서도 약물 복용이 상습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 뒤 CNN에 출연한 한 군의관은 2차대전 때부터 미 공군은 각성제를 사용해 왔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 같은 군과 약물의 야합에 중국이 가세했다. 한 알을 복용하면 72시간 동안 잠자지 않고 휴식도 없이 정상적인 사고와 체력을 유지하면서 작전을 수행하게 하는 '밤 독수리'라는 이름의 약을 개발했다고 한다. 문제는 약의 성분이나 작용 방법, 부작용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일시적인 전투력 증진 효과는 있겠지만 약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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