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남사당패 '풍물연구원 푸리'의 꼭두쇠 손석철 대표

입력 2011-10-19 10:26:47

"고된 삶 잊고 한바탕 놀고 나면 속이 후련"

척박한 전통문화 토양에 풍물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창단된 푸리 풍물단의 손석철 대표가 정기공연을 앞두고 단원들과 연습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척박한 전통문화 토양에 풍물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창단된 푸리 풍물단의 손석철 대표가 정기공연을 앞두고 단원들과 연습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농악은 노동의 시름을 잊기 위한 민초들의 문화였죠. 고된 삶을 잠시 잊고 신명을 마음껏 풀어헤쳤던 게 풍물놀이였습니다."

현대판 남사당패인 '풍물연구원 푸리'의 손석철(43) 대표는 23년째 농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돈과 명예가 따르는 것도 아닌데 그는 묵묵히 이 길을 걷고 있다. '푸리'라는 풍물단 명칭은 '열고 닫고 맺고 푼다'는 국악리듬에서 따왔고 손 대표의 역할은 꼭두쇠다. 그는 욱수농악(대구 무형문화재 3호)의 전수자이기도 하다.

"풍물의 가장 큰 매력은 신명의 소통입니다. 서양악기는 독주도 가능하지만 풍물은 독주보다는 30~40명이 서로 마음이 통해야 가능한 합주가 더 멋집니다. 클라이맥스에 오르면 연주자들의 입에서 단침이 고일정도로 엑스터시가 솟아납니다."

손 대표가 풍물 꼭두쇠가 되기까지는 고달픔도 많았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처음 풍물을 접한 그가 풍물을 계속하려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농악과 풍물 고수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물의 맛과 기예를 익혔다. 전국농악대회가 열리면 그 음악들을 모두 채록해 듣고 또 들으며 음률을 익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공을 쌓은 그는 1998년 풍물강습과 사물놀이, 난타를 가르치는 '풍물연구원 푸리'를 개원했고 2003년 푸리 풍물단도 창단했다.

"푸리 풍물단엔 4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면서 각종 풍물 동호인 활동을 지원합니다. 풍물은 민족정신을 생명력 있게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근본에 충실해야 올바른 전통 계승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손 대표는 최근 다양한 풍물동호회가 생겨나 봉사를 한답시고 소외계층과 사회시설을 찾아 연주하는 풍토가 썩 달갑지는 않다. 실력 검증을 확실히 거친 뒤 봉사활동을 해야지 단순히 무대경험이나 경력을 쌓기 위해 무대에 올라서는 전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푸리 풍물단은 월 1회 이상씩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국악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기회가 닿는 곳이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도 찾아가는 국악연주회를 하고 있다. 또 푸리 풍물단에서 배운 15개 풍물단도 국악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노인요양시설에서 공연할 때는 어르신들이 신명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소외된 곳에 와 준 것만도 고맙다고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너무 기뻐합니다."

푸리 풍물단은 다음 달 10일 대구 동구문화체육회관 대공연장에서 정기발표회를 갖는다. 손 대표는 "정기발표회를 통해 중년층엔 향수를, 젊은 층엔 신명을 보여줄 것을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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