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현대사, 그 시대를 살다 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의 이력
지난 5월 문을 연 대구미술관이 개관전에 이어 두 번째 주제전을 선보인다. '삶과 풍토'전. 우리에게 펼쳐진 풍토, 그 속에서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대구시민에게 큰 인기를 끈 리차드 롱의 전시를 선보였던 3전시실도 프랑수아 모흘레 작품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대구미술관 전시 감상으로 가을을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게 삶은 어떤 것일까. 온몸에 나이테가 새겨진 시골 촌로, 막 노동을 끝내고 논둑 위에 선 농부의 모습을 보자. 화가 이종구의 작품에는 원색의 옷을 입고 선 채 굵은 힘줄이 드러난 늙은 여성이 서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지나치게 붉고 푸른 꽃무늬, 그 속에 숨겨진 고단함 같은 것 말이다. 대구미술관의 '삶'에 관한 전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을 건다. '삶'이라는, 지극히 포괄적이고 일상적인 주제를 40여 점의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 대구미술관은 두 번째 주제전으로 '삶과 풍토'전을 연다. 작품 속에 담긴 한국인의 삶과 풍토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1층 1전시실에서 '삶', 2층 2전시실에서 '풍토'전이 각각 펼쳐진다.
◆ '삶'
1전시실에서 열리는 '삶'전은 개인의 일상생활을 담은 작품에서부터 사회적 존재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1950년대 가난했던 삶의 모습부터 1980년대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정신은 휘발되고 가벼운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오늘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작가들의 예민한 시선에 비친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1950년대 박수근은 화강암을 연상하게 하는 투박한 표현법으로 서민들의 소박한 정서를 화폭에 녹여낸다. 장욱진의 작품에는 장난기 가득한 동심이 담겨 있다. 오윤은 암울한 1980년대, 판화를 통해 우리 고유의 모습을 드러냈다. 신학철의 그림 '한국현대사 802'에는 시대의 불안과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대사의 일그러진 풍경과 분단의 아픔을 몽타주 기법으로 보여준다.
그래도 희망은 계속된다. 이응노의 '군상'은 1980년대 광주민주화항쟁을 계기로 저항의식과 평화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뒤돌아볼 새 없이 질주해왔다. 강홍구의 '그 집' 시리즈는 도시의 재개발에 대한 성찰이다. 재개발 지역의 집들을 촬영하고 프린트해 그 위에 색을 칠하는 작가는 사라져버린 집들에 대한 뚜렷한 추억을 각인시킨다.
곽덕준의 유머러스한 작품 '대통령과 곽 시리즈'가 한 벽면을 가득 채운다. 타임지 표지사진에 나온 대통령과, 자신의 이미지를 교차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재일교포 2세인 작가는 누구나 똑같이 중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점과, 실은 모두가 아무런 존재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위트 있게 보여준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권오상의 컬러풀한 입체 작품이 눈에 띈다. 실제 크기의 조형물에 사진을 오려붙여 제작한 사진조각은 공허하면서도 가벼운 터치로 일상을 재조명한다. 그가 만든 피에타에는 이미 죽음의 무게감은 사라지고 없는 듯하다. 정연두는 영상작품 '수공기억'을 선보인다. 자신의 기억을 과장해 들려주는 노인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허세를 부리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위안하고 치유하는 모습이 우리와도 다르지 않다.
전시장 한쪽에는 이용백의 영상 '엔젤 솔저'가 흐른다. 꽃으로 뒤덮인 세상, 군복도 총도 온통 꽃이다. 꽃과 군인이라는 대조되는 아이콘은 새로운 인식의 충돌로 관객들을 이끈다.
◆ '풍토'
1전시실 '삶'에 관한 전시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장성'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2전시실에서 열리는 '풍토'에 관한 전시는 '장소성'에 관한 이야기다.
풍경의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이 전시에서 한국적 풍토에 대한 고민은 물론 자아가 투영된 풍경을 보여준다.
전시의 실마리는 겸재 정선의 작품 '만폭동도'(萬瀑洞圖)에서 시작된다. 금강산 내 가장 경치가 좋은 이곳은 물소리와 온갖 새들의 지저귐까지 한데 어우러져 묘사된다. 정선만의 독특한 기법은 관념 속의 이상향을 그리는 우리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 흐름은 이상범과 변관식으로 이어진다. 이상범은 향토색 짙은 생활 주변의 일상적 경관을 정신을 중시하며 그린 반면 변관식은 현실의 산수를 그린 실경산수화가다. 박대성은 실경에서 자연이 주는 느낌을 화폭에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지역적 풍토를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이인성은 경주풍경을 보여준다. 이원희는 우리나라의 평범한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주명덕은 '금강산'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윤광조는 경주 안강에서 작업하며 느낀 주변 환경을 도예 작품으로 보여준다. 설악산에서 20년 이상 풍경을 그려온 김종학의 그림에서는 삶에 대한 애절함을, 오직 장미만을 그려온 황염수는 장미를 통해 작가의 내면을 보여준다.
이 전시를 기획한 강효연 대구미술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풍경이나 특정 지역을 그린 것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면서 "세상에의 존재, 대상을 통한 자아의 투영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관을 담은 개개인의 가치관이 내포된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함이다"고 밝혔다. 2012년 2월 12일까지. 입장료 1천원. 053)790-3030.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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