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어렵습니다

입력 2011-10-17 07:56:10

방바닥을 놀이터 삼아 뒹굴던 주말 오후에 뭐 할 일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본다. 별수 없이 영화라도 보자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기왕에 극장으로 갈 일이면 필수품이 된 할인카드와 포인트 적립 카드까지 챙기는 센스를 갖춘다. 마침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포인트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짜 영화가 되겠다고 뿌듯해하며 카드를 내밀었건만 "주말에는 포인트 사용이 어렵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지 못한 일이라 당황도 되었다. 그래도 공짜 영화를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뭐가 되었든 어려운 일을 해보자고 혼자 다짐했다.

"어려워도 해볼게요. 어쩌면 되는지 가르쳐주세요." "그게 아니라 손님, 주말에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내가 어려운 일은 못하게 생겼단 말인가. 무수리로 살아가는 인생을 어찌 알아보지 못하고 과소평가를 한단 말인가. "괜찮아요. 알려 주세요. 이거 오늘 아니면 못 쓰게 되거든요." "아 참 손님."

옆에 서 있던 남편이 눈치 없는 아내를 환기시킨다. 부끄럽다는 듯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안 된다는 거잖아"라며 되레 투덜거린다. 할 수 없이 그날 아니면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포인트를 구해 내려고 매표소를 전전했다. 궁여지책으로 포인트와 맞바꾼 함지박만 한 팝콘에 다른 간식거리를 끌어안고 영화를 봤다. 아무나 목이 메는 팝콘은 먹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렵다는 말은 하기에 힘겹지만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돌아올 무렵에야 잘 포장된 거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일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해야 적절했을 것이다.

자꾸 딴죽을 걸고 싶은 경우가 또 있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 듣기 쉬운 "계산을 도와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다. 돈을 좀 내주겠다는 말로 듣는다면 화성인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예의 있어 보이는 표현 같지만 상대방의 필요에 적당한 대답은 아닌 듯 싶다.

주말에 쌓은 포인트를 주말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때에는 은근히 눈치를 주면서 구입할 때에는 계산을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나처럼 어리바리한 소비자가 착각을 하거나 오해하기 쉬운 요란한 겉포장은 사양하고 싶다. 소비자가 원하는 친절은 원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살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입술로만 내뱉는 친절이 감동을 주는 행동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리라. 교육받은 방식대로 손님을 응대하는 직원들을 탓할 생각은 아니다. 매표소와 계산대는 사업장의 얼굴이라고 여겨진다.

표정없이 교육받은 매뉴얼을 반복하는 사람이 자동발권기계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사업장에서라도 마음이 오고 가는 제대로 된 대화를 가르치면 좋겠다. 물론 손님이 되는 사람도 고운 마음을 준비하고 가면 좋겠다.

이 미 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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