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사각의 링, 인간 대신 싸우는 900㎏ 로봇 복서
2020년. 링 위에서 치열한 권투가 벌어지고 있다. 선수는 무게 900kg에 2m가 넘는 로봇들이다. 힘든 인간 대신 로봇이 권투를 대신하는 시대다.
숀 레비 감독의 '리얼 스틸'은 흥미로운 SF 영화다. 껍데기는 '트랜스포머'(2007년)처럼 로봇의 혈투를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1976년)와 링 위의 아버지와 그를 응원하는 아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담은 '챔프'(1979년)의 정서가 흐른다. 21세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20세기 아날로그가 만남이랄까.
젊은 시절 챔피언 도전에 실패하고 쇠락한 전직 복서 켄튼(휴 잭맨). 그는 로봇 파이터를 차에 싣고 시골로 돌아다니며 싸구려 이벤트를 선보이는 프로모터 겸 로봇 조종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옛 명성을 다시 찾고 싶지만, 쌓여가는 것은 빚뿐이다. 어느 날 헤어진 아내의 죽음과 함께 자신도 모르고 있던 아들 맥스(다코다 고요)가 찾아온다. 평생을 혼자 살아온 남자는 아들의 출현이 달갑지 않다. 아들 또한 그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빠'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그러던 중 맥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행히 고철 로봇에 옷이 걸려 살아난다. 고철 로봇을 집에 데려온 둘은 최고의 파이터로 재생시키기 위해 훈련에 돌입한다.
'리얼 스틸'은 로봇의 움직임이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조종사와 똑같이 움직이기도 하고, 함께 춤을 추며 링에 입장하기도 한다. 실물크기의 로봇과 배우의 몸에 센서를 부착시켜 인체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모션 캡처 방식을 병행해 실감나는 복싱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 속 복싱 장면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슈거 레이 레너드의 자문을 받아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쇠뭉치들이 치고받을 때마다 들리는 육중한 금속음까지 덧입혀 관중석에 짜릿한 쾌감을 던져준다.
시종일관 기계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트랜스포머'와 달리 로봇의 쇠 표면에 감정선까지 담아냈다. 맥스의 로봇 파이터 아톰이 혼자 라커룸에 가만히 앉아있는 장면은 라커룸에 배여 있는 긴장과 두려움, 패배의 아픔까지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링 위에서 로봇들이 싸우는 장면은 컴퓨터 게임처럼 차갑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경기를 통해 차츰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드라마는 따뜻하다. 고물 복서와 고철 로봇은 서로 닮은꼴이고, 아들을 통해 지난 아픔을 걷어내고 마침내 삶의 끝에서 환희를 맛본다. 아들도 그제야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며 포옹한다.
부자(父子)의 갈등과 화해는 할리우드의 통속 스토리다. 엄마의 부재, 존재도 모르던 아들의 출현, 표현은 못하지만 깊은 정이 있는 아빠, 감정에 서툴렀던 그들이 엄청난 도전을 이겨내면서 가족애로 뭉치는 이야기는 숱하게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이런 통속은 시간을 넘어 늘 유효했다.
'리얼 스틸'은 이를 로봇을 통해 그려낸 것이 색다르다. 철마다 외피를 갈아입는 할리우드의 상술이 놀랍기만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했고, 숀 레비 감독은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제작하고 연출했다.
카우보이처럼 거친 이미지를 가진 휴 잭맨이 차츰 부성(父性)을 찾아가는 연기가 돋보인다.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7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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