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트선재미술관 '소나무 작가' 배병우 전
사진 앞에 선다. 우리가 지금까지 바라보았던 경주의 소나무가, 이처럼 그윽하고 아름다웠던가. 배병우의 사진은 우리를 풍경 앞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경주의 왕릉, 창덕궁, 경주의 소나무. 그의 사진 앞에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배병우의 전시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 열린다. 제19차 세계관광기구총회(UNWTO) 개막일에 맞추어 열리는 그의 이번 전시는 30여 년간 작업을 주요 연작 중심으로 정리한 전시다.
'소나무 작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가 30년간 천착해온 주제들은 소나무뿐만 아니라 알함브라 궁전, 창덕궁, 제주의 오름 등 다양하다. 이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주제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전 세계 소나무를 다 둘러봐도 우리나라, 특히 경주의 소나무가 가장 매력적이에요. 중국 소나무는 중국인을 닮았고, 일본 소나무는 일본인을 닮았어요. 신라인이 가장 멋있었기 때문일까요?"
그는 1983년부터 소나무를 찍기 시작했다. 사진작가로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그 연결고리로 한반도의 식물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경주의 소나무를 찍게 됐다. 찍다 보니 확신이 생겼고, 그는 어느덧 '소나무 작가'로 알려졌다. 그 끌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경주의 소나무는 왕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라고 심은 나무예요. 그 성스러움에 가 닿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사진에 담긴 풍경에는 깊이감이 있다. 세상 어딘가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초월적인 풍경 속에는 미묘한 공기가 흐른다. 깊고 무한한 존재감이 가득 찬 그의 사진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또 공들인 시간이 담겨 있다. 어떤 대상이든 최소 10년 이상 지켜보며 셔터를 누르는 작가는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여기 괘릉 무인석(武人石)은 정말 씩씩해 보이죠? 경주는 여인의 선을 닮은 왕릉이 곳곳에 있어요. 여기 이 정혜사지 석탑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겁니다. 비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에요."
이번 전시에서 그는 간간이 카메라에 담아온 경주의 풍경들을 발표한다. 1천 년이라는 세월이 만든 왕릉의 선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감동을 준다. 석굴암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그 자태를 드러낸다. 작가의 앵글은 자연스럽고 고유한 아름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풍경 사진과 더불어 동'서양의 대표적 세계문화유산인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과 서울의 창덕궁을 담은 연작들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음악인 김수철이 만든 음악과 소나무 사진을 함께 담은 영상물도 감상할 수 있다. 고즈넉한 풍경과 음악, 그리고 경주의 풍경이 딱 맞아떨어진다.
"저는 한국의 풍경을 붓 대신 카메라로 찍고 있어요. '사진으로 그리는 수묵화'라는 표현을 좋아하지요."
그의 사진은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04년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소나무'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됐으며 2006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소나무' 시리즈 중 한 점이 한국 작가의 사진작품 가운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사진을 구입한 것은 이슈가 됐고, 세계적인 미술가의 엄선된 작품 이미지만을 사용하는 '2010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포스터로 작품이 채택되기도 했다. 그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풍경들이 세계인의 마음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소나무 사진 한 장. 흰 바탕을 배경으로 뻗어나온 소나무 가지의 위치가 절묘하다. 여백을 품고 있는 소나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걸어가다가 힘들면 앉아서 찍고, 앉는 게 싫어지면 누워서 찍지요. 이 사진은 경주 소나무를 누워서 찍은 거예요."
그는 시야를 바꿔보라고 말한다. 눈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30년,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작가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뉴 비전(new vision)을 선물할지, 사뭇 기대된다. 전시는 2012년 2월 26일까지 열린다. 054)745-707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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