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뇌경색 알지만 아픈 아내·아들 걱정에 아플 수 없는 정권진 씨

입력 2011-10-12 09:41:35

뇌종양 아내 돌보는 아픈 아빠 "공황장애 앓는 아들이 더 걱정"

정권진(54) 씨 가족은 네 식구 중 3명이 환자다. 정 씨는 뇌경색 진단을 받고 매일 약에 의존하고 있으며 아내는 뇌막에 생긴 종양 제거술을 받은 뒤 8월부터 지금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정 씨 부부가 더 걱정하는 것은
정권진(54) 씨 가족은 네 식구 중 3명이 환자다. 정 씨는 뇌경색 진단을 받고 매일 약에 의존하고 있으며 아내는 뇌막에 생긴 종양 제거술을 받은 뒤 8월부터 지금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정 씨 부부가 더 걱정하는 것은'공황장애'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큰아들이다. 우태욱기자

정권진(54) 씨 가족은 네 식구 중 3명이 환자다. 정 씨는 2008년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부인은 뇌막에 생긴 종양 제거술을 받은 뒤 지금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정 씨 부부는 자신들보다 마음의 병을 앓는 큰아들 일수(가명'28) 씨가 더 걱정이다."사람이 무섭다"며 집에만 숨어 지내던 일수 씨는 6년 전 대학병원에서'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세상과 벽을 쌓은 채 지내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11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6층 입원실. 머리에 붕대를 잔뜩 감은 부인 강영희(52) 씨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강 씨는 지난 8월 말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병명은'뇌막 양성신생물'. 다른 곳으로 전이는 되지 않았지만 뇌막에 양성 종양이 생겼다. 대뇌 동맥류 진단까지 받은 강 씨는 "양성 종양이라도 방치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권유로 머리 속에 있는 6㎝ 크기의 종양을 없애는 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아픈 아내를 간호하는 것은 남편 정 씨의 몫이다. 고혈압과 뇌경색으로 알약 수십 개를 손에 움켜쥐고 사는 그지만 아내 곁을 떠날 수 없다.

그는 한때 잘나가는 보험 설계사였다. 대구 주요 기업을 찾아다니며 '단체 보험'을 팔았던 그는 2000년도 초반엔 연봉 6천만원을 받는 괜찮은 월급쟁이였다. 하지만 17년차로 접어들던 2006년 정 씨는 보험회사를 그만뒀다. 해가 갈수록 보험 실적이 줄어들었고 회사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다. 회사를 그만둔 정 씨는 700만원을 주고 1.3t 화물트럭을 샀다. 급식 업체에서 대구 지역 학교 급식소로 식품을 옮기는 운수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수입이 변변치 않자 그는 보험 회사에 다닐 때 넣어둔 생명보험을 모두 해약했다. 하지만 이 일도 오래가지 못했다. 새 일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손발이 마비되고 두통이 심해져 병원에 찾아갔다가 '뇌경색' 진단을 받은 것.

정 씨는 "하루 세 번씩 수십 개 알약을 삼킬 때마다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때문에 모든 것을 놓고 싶은 심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 씨가 아프자 부인 강 씨가 대신 밖으로 나섰다. 살림하는 것 외에는 재주가 없었던 아내는 식당 설거지일을 구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설거지만 하는 단순 노동이었는데 강 씨도 결국 얼마되지 않아 쓰러지고 말았다.

◆세상과 담을 쌓은 아들

정 씨 부부는 큰아들 일수 씨만 생각하면 목이 멘다. 일수 씨는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하기를 좋아했던 활달한 성격이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펜싱 선수로 활동했다. 정 씨는 공부보다 운동, 운동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을 못마땅해 했다. "일수가 장남이니까 운동은 취미로 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아들을 많이 압박했죠. 그게 다 내 욕심이었어요." 일수 씨는 결국 고등학교 때 펜싱을 그만뒀다. 하지만 공부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일수 씨는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군대에 갔다. 일수 씨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은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고 그날 이후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부모가 이유를 물으면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며 몸을 둥글게 움크리고 방안에 숨을 뿐이었다. 한 번은 외출을 했다가 "신호등 불빛이 검게 보인다"며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부인 강 씨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큰 아들을 데리고 절에 갔다. 아들을 살펴본 한 스님은 "몸에 귀신이 붙었다"며 굿을 권했다. 없는 돈을 끌어모아 굿을 했지만 아들의 증세는 심해져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강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강 씨는 아들의 병이 '공황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없이 극단적인 불안 증상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장애다. 스스로를 가두고 마음의 벽을 쌓은 아들에게는 약도 소용 없었다. 벌써 6년째 일수 씨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정 씨 부부는 둘째 일규(가명'17)라도 바르게 자라길 원한다. 일규는 부부가 딸을 갖고 싶어 늦게 나은 자식이다. 부부의 바람이 통해서였는지 고등학교 1학년인 일규는'딸노릇'을 한다. 강 씨가 지쳐 있으면 어깨를 주물러 주고, 설거지도 대신한다. 강 씨가 병원에 입원한 뒤 일규는 혼자 집에 남아 있지만 불평 한 마디 없다.

정 씨 부부는 작은아들을 위해서라도 바닥을 치고 일어나야 한다. 걸림돌은 항상 '돈'이다. 강 씨 수술비와 입원비로 쌓인 돈은 1천여만원. 올해 3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구청에서 긴급의료지원비로 300만원을 받았지만 나머지 돈을 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부인 병원비와 큰아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 정 씨는 두 가지 난관을 혼자 힘으로 넘을 자신이 없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