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랜드마크

입력 2011-10-12 07:07:07

십여 년 전, 대구의 수장(首長)께 말했다.

'삼공단이 소개(紹介)되는 자리에 대구의 랜드마크가 될 미술관을 유치하면 어떨까요. 퇴락하던 스페인의 산업도시 빌바오 구겐하임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세계 유수의 작가들 작품 전시나 소장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대구공항은 저절로 국제공항화되지 않겠습니까. 내친김에 미술관 주변도 시간과 공을 들여 타일 작품으로 도로를 내거나, 시민들이 잠시 앉아 쉴 벤치까지 견고한 작품으로 설치하고, 나무 한 그루, 주변조경까지 정성을 들여 경관을 조성한다면 동아시아의 명소가 되지 않겠습니까.'

 당시의 수장께서도 그 아이디어의 파급효과에 대해 전폭 수긍하셨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인 지난해, 그 말은 돌고 돌아 어느 교수님이 중앙 일간지 지면에 어떤 지자체든 축제 또는 소모적인 행사에 힘을 쏟지 말고 도시의 랜드마크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같은 미술관을 유치하라는 칼럼을 쓰셨다. 아, 십여 년을 돌고 돌아 안착한 내 말발!

그저께는 가을볕도 좋았고 진주의 지인이 대구에 온 김에 자랑삼아 대구시립미술관에 잠시 들렀다. 마침 다음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 제대로 관람은 할 수 없었지만, 옅게 물든 나뭇잎 아래 한적한 길을 걸으며 그는 화가답게 감탄을 연발했다. 저 옆이 이번 육상경기대회를 치른 월드컵경기장이에요, 미술관 삼 층에서 바라보는 전경도 실경(實景) 화폭이죠. 일행들은 모두 홍보대사라도 된 듯 신이 나 그를 안내했다.

그때 일행 중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대구에도 파리의 에펠탑처럼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하나쯤 꼭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그 하나만으로 금세 명성을 드높이진 못하겠지만, 미래를 위한 인프라 조성을 너무 재기만 하다가 늦추는 것도 아무래도 능사는 아닐 것 같아요. 누가 대답했다. Apple City! 스티브 잡스가 베어 먹었더라도 대구를 상징하는 사과를 멋지게 형상화해 시내 한복판에 세우는 건 어떨까요.

또 다른 누군가 말했다. 맞아, 제목도 '굿바이 미스터 잡스!'로 붙이고 말이지. 아아, 폐기된 애플 노트북으로 거대한 사과를 만들어도 재미있겠군. 제작비를 애플에 청구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지, 애플이 동아시아지사를 대구에 세우려고 할지도 모르지. 피어오르는 가을 들녘의 연기처럼 온갖 말이 넘쳐나자 누군가 말했다. 점잖은 도시를 누가 자꾸 그렇게 경박하게 몰고 가노!

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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