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 조정주.김욱 작가 "승유가 눌이 멀지 않았으면 복수 그만 두지 않았을

입력 2011-10-12 07:52:52

'공주의 남자' 조정주.김욱 작가 "승유가 눌이 멀지 않았으면 복수 그만 두지 않았을 것"

김종서 장군의 둘째 아들 김승유는 과연 존재했던 인물일까?

김승유는 그렇게 세조에게 저항하고, 끊임없이 복수를 향해 칼날을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왕조실록에 나오는 세조의 자녀에서 세령의 존재는 있었던 것일까?

팩션이지만, 더 현실에서 그런 상황이 나올 수 있었겠다는 상황설정과 리얼하게 그려내는 묘사력 그리고 심리적인 긴장감까지 풀었다 조였다 하는 능력으로 드라마 방송 기간 내내 관심을 끌었던 공주의 남자.

그 공주의 남자는 뜻밖에도 그렇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급 작가 두명이 썼다. 이들은 승유가 눈이 멀지 않았으면 복수를 그만두지 않았을 순간까지 몰고갔고,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서 꼭 필요한 장치로 김승유가 볼 수 없는 세상에 살도록 했다.

왕관을 버린 영국의 러브스토리 못지않은 러브스토리가 조선시대에도 있었음을 공주의 남자가 보여준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옆에 뒀지만 볼 수 없다는 점, 그것이 더 마음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한다.

'공주의 남자'를 끝낸 조정주(39)·김욱(37) 작가는 연합뉴스와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신인이라 할 말이 없다"고 사양했지만 두 작가가 '공주의 남자'를 통해 신인답지 않은 필력을 과시하며 팩션 사극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작가는 2006년 KBS 극본공모에서 당선돼 '인간말종 개상구' 등의 단막극을 쓰고 2009년 김현주.이동욱 주연의 '파트너'로 미니시리즈 드라마 데뷔를 했다. 김 작가는 2008년 KBS 극본공모에 당선됐으나 한동안 단막극장이 없어지면서 영화쪽으로 옮겨가 '구세주'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이번에 '공주의 남자'로 드디어 드라

마 작가로 데뷔했다.

두 작가는 KBS의 '중매'로 만나 1년간 '공주의 남자'를 공동 작업해 '명품 팩션사극'을 만들어냈다.

"아직 엔딩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비극적 이야기라 여운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는 두 작가와 문답을 나눴다. 이들은 사진촬영은 고사했다.

--결말을 놓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주인공들이 죽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결말을 언제 결정했나.

▲뒤에 가서야 결정했다.(웃음) 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전쟁터에서 한명이 살아남든, 두명이 살아남든 어차피 완전히 행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여러 가능성을 두고 작업했다. 그러다 살리는 것으로 결정하고는 승유의 눈이 멀어야 복수를 그만두겠다 싶었다. 시청자로부터 돌팔매를 많이

맞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별로 안 맞았다.(웃음, 조정주 이하 조)

난 사실 비극적인 결말을 원했지만 조 작가님이 유보적이었다.(웃음) 승유가 죽기 전에는 복수를 멈추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절충안이었던 것 같다.

해피엔딩인 듯하지만 슬픈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 같아 마음에 든다.(김욱 이하 김)

--역사적 사실에 허구의 살을 붙이는 작업이 흥미로웠을 것 같다.

▲끼워 맞추는 재미, 윤색의 재미가 있었다. 역사의 틈을 찾아낸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실제로 그 역사에 끼어들었다면, 계유정난 등의 사건들을 진짜로 겪었다

면 어땠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확실한 역사적 사건을 무대로 했기 때문에 판을 새롭게 짜는 작업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 비어있는 부분들을 조각 맞추듯 메우는 묘미가 컸다.(조)

사극이라는 게 사실적인 지점이 없으면 얘기를 풀어나가기가 힘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공주의 남자'는 '추노' 같은 작품에 비해 뿌리가 단단하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바로 그점이 나중에는 힘들게도 했다. 다른 드라마는 판을 한번 짜 탄력이 붙으면 그 힘으로 끝

까지 가지만 우리 드라마는 계속해서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붙여야했기 때문에 2,3회에 한번씩 판을 바꿔야했다. '이 대본이 참 쓰기 힘들구나' 느꼈다.(김)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다 허구다. 세령의 경우는 실존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기록에 따라 수양의 딸이 한명에서 두명으로 다르다. 또 승유도 족보에 나오기도 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없기도 하다. 신면은 함길도 절제사로서 이시애의 난을 평

정하러 갔다가 죽은 것은 맞지만 실제로는 계유정난 당시 소년이었다. 계유정난(1953)에서 이시애의 난(1967)까지 10여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우리 드라마에서는 그 시간차를 없애버렸다. 정종도 실제로는 단종과 나이가 비슷했다. 젊은 인물들은 실존했다고 해도 그들의 관계는 모두 허구다. 또 드라마에서 정치적 사건의 발생 순서는지켰지만 그 연도는 필요에 따라 요리했다.(김)

--역사왜곡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왜곡 대신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방송이 끝나면 관련 인물과 사건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가 되는 것을 보고 기뻤다. 계유정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기를 바랐고, 사서에 한줄 문장으로 죽어있던 역사를 살려낸다는 기분으로작업했다.(조)

허구를 가미했지만 역사의 큰 선을 왜곡하지 않으려는 것은 분명했다. 수양과 김종서 등 어른들의 부분에서도 실제 역사보다 감정선을 더 강화하는 정도로 했다.

그렇게 하면 욕먹지는 않겠다 싶었다. 우리는 역사를 새롭게 만들려 한 게 아니었다

역사 속 비극적 사랑을 그리려 했던 것이다.(김)

--창작에서 가장 애를 먹은 부분과 가장 매끄럽게 나온 부분은 어디인가.

▲후반부 승유의 거사가 계속 실패하게 되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괴로웠다. 승유를 영웅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실패를 해도 계속 복수를 시도하게 하는 부분이 어려웠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로 설정은 했는데 실제로 승유와 세령의 감정이 어땠을까가 계속 고민됐다. 개인적으로 사육신 부분이 마음에 들

었다. 아주 익숙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당시 대의의 가치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리고 싶었는데 시청자의 반응이 오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조) 종학(宗學) 부분은 상상력의 소산이다. 실제로는 종학에서 여성은 교육하지 않

았지만 승유와 세령을 연결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시청자가 허구의 러브스토리에 집중해서 봐야하는데 그러기 위한 초반 장치로 종학부분이 괜찮았던 것 같다

. 또 사육신은 보통 성삼문, 박팽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데 우리 드라마에서는 종학에 몸담았던 이개를 중심으로 꾸몄다. 실제로 이개는 단종의 스승이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얻은 작가로서 성과는 무엇인가. 공동작업의 어려움도 있었을텐데.

▲비극이 다뤄졌다는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실패한 역사를 시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걱정했는데 비극이 이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또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의미있었던 것 같다. 또 팩션으로서 상상력의 범주를 넓힐 수 있어 좋았다.

정치와 로맨스의 비율 조정 부분에서 의견충돌이 있었지만 결국은 조 작가님의 의견이 맞았다. 우리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승유와 세령의 사랑이 어찌되나를 보려고했던 것이다. 내가 (조 작가에게) 잘 졌던 것 같다.(웃음) 혼자 할 수 없는 작품이었는데 좋은 그늘 아래에서 공부를 잘한 것 같다.(김) 에이, 그건 아니고 정치적 문제 안에서 어떻게 다룰까 좀 이견을 보인 적은 있지만 사실 다툴 시간조차 없었다. 대본 쓸 시간이 부족해서 빨리 누구 하나가 져야했다.(웃음) 슬픈 멜로는 TV 드라마에서 안된다고 보는 시각이 강한데 14회에 승유

가 세령을 납치한 장면에서 시청자의 반응이 강하게 오는 것을 보고 둘의 비극적 멜로가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는구나 느꼈다.

나야말로 감독님과 김욱 작가가 먼저 이야기의 얼개를 짜놓지 않았다면 이 작업했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의미있는 작업이었다.(조)

뉴미디어국 maeil01@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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